2학년 2학기 봄 날 반가운 마음으로 편지를 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 한 통을 무심코 열어봤다. 그게 큰 화근이었다. 이제 막 글을 읽고 일기를 쓸 줄 아는 나이 초등학교 2학년인 내게 새로운 글들을 읽는 것은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편지 속 내용은 아리송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해 안 되는 대목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100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영국에서 짐 스웨이 턴이라는 사람은 1930년에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 복사, 죽음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편지를 복사하거나 글씨로 옮기지 못한다면 사망에 이른다는 단어를 읽고 사망이 무엇인지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사망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마 그 당시 유행했던 빨간 마스크라는 귀신보다도 무서웠던 것이 내게는 행운의 편지였을 것이다. 나는 편지를 잘 접어 엄마 아빠가 볼 수 없는 책상 서랍 안에 꾹 두고 나만의 비밀로 간직한 채 골똘히 고민했다. 어린 나는 복사를 알리도 없었으며 일주일 내에 같은 편지를 백통 정도 적는다고 하면 학교, 학원 모두를 빠진 채 편지만 배껴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야 말로 초등학생이 느낄 수 있는 극도의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끙끙 앓다가 포기했다. 복사를 하게 된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 테고 똑같이 글씨를 베껴 쓴다고 해도 시간 안에 다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편지의 다음 말들은 어린 내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편지를 보내지 않을 시 겪게 되는 일들이었다. 빼곡하게 적힌 편지에는 8~9년 후에 죽게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둘 펴며 그게 언제쯤인지 새어보았다. 일 년 이년 삼 년 사 년……. 손가락을 샐수록 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편지에 의하면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쯤 죽게 된다는 것인데 대학교는 꼭 가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이 돼서 화장도 해보고 예쁜 옷들도 입어보고 싶었는데 왜 내가 이런 편지를 보게 돼서 이런 시련을 겪게 된 것인지 알게 모르게 한동안 너무 슬펐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속앓이만 했다. 걱정이 심해지자 속도 아프고 밥도 잘 안 들어갔다. 엄마도 그걸 눈치챘는지 물어봤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엄마한테 말해도 답은 안 나올 것 같았다. 또 엄마한테 보여주면 엄마도 편지를 보게 되어 8~9년 후에 죽게 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대로 초등학교 이학년 인생의 서막이 끝날 수는 없었다. 엄마는 고민이 있으면 학습지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했다. 내게 선생님은 만능 해결사였다. 항상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면 답을 내주던 사람이 학습지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김 없이 선생님이 학습지를 한 아름 가지고 우리 집에 방문했다. 수심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시고는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했다. 선생님한테 편지를 보여주면 선생님도 편지를 써야 되는 건 아닌가? 그냥 모두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선생님은 괜찮다며 나와 눈을 맞추며 무슨 일인지 말없이 되물었다. 나는 서랍에 감춰두었던 행운의 편지를 선생님에게 보여줬다. 선생님은 한참을 진지하게 읽더니 내게 종이 한 장과 펜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동그란 눈으로 무슨 일인지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10분 후에 선생님은 죽는다 라는 글씨를 써 보라고 하셨다.
“안돼요”
내 입에서 안돼요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선생님은 내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본인의 이름과 10분이라는 시간을 쓰게 해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는지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10분이 지났다. 나는 10분이 지나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10분이 지나자 후우 하고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선생님도 환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설명보다 한 가지 예시를 직접 보여주면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 것이다.
행운의 편지는 생각해보면 아무것 일도 아니다. 몇 년이 지나니 행운의 편지는 변질이 돼서 메신저로 새로운 문자 피싱의 한 형태로 돌고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기도 하다. 마치 지금 내가 세네 살 아이들에게 도깨비, 말 안 들으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가요 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얼마나 순수했던가. 복사비가 비싸다고 생각해 직접 편지를 적으려고 했던 마음, 가족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보면 그 사람도 몇 년 후에 죽을까 봐 편지를 서랍에 숨기던 모습, 그 옛날을 떠 오르면 행운의 편지는 내 순수했던 마음을 추억할 수 있는 정말로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했던 행운의 시절이었다. 가끔 어린 시절 행운의 편지를 받았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어렸을 때 절박했던 그 마음을 떠올리곤 한다. 내게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준 아찔하고 무서웠던 행운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