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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의 의미

어느 겨울날 할머니는 밥으로 안부를 물었다

by 최물결

아흔의 할머니는 엄마가 출근할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에휴 아침도 안 먹고 가나”

엄마는 본인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챙겨 입지 못한 채로 할머니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다가 헐레벌떡 출근을 한다. 할머니는 본인이 매일 같은 말을 하는 줄 모른다. 그저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안부를 묻는다. 내가 어디 외출이라도 갔다 오거나 다녀오려고 할 찰나에 할머니는 밥은 먹고 나가나 돈 만원이라도 줄까. 요즘 이 정도면 밥 한 끼 먹을 수 있지 않나라며 인사 대신 밥 걱정으로 손녀의 안부를 대신 물어보신다. 그 옛날 할머니 시대 때는 밥 한 그릇 먹는 게 엄청 중요했다고 한다. 보릿고개라는 노래가 있었을 정도로 밥은 중요한 의미 었을 터.

한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관찰카메라가 식당을 돌며 밥 한 그릇을 얻어먹을 수 있는지 식당을 보며 테스트해보는 영상이었다. 실험인즉슨 부산지역 일용직 노동자가 일거리가 없어 밥을 직접 얻어먹으러 다녀 한 끼만 달라고 사장님께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모 프로그램의 밥 주는 프로그램은 연예인이라 그렇다 쳐도 일반인에게 선뜻 값나가는 밥 한 그릇을 줄 선뜻 내주는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궁금해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관찰카메라 속에 잡힌 식당 사장님들은 일용직 노동자의 말을 듣더니 거리낌 없이 밥을 내어주었다. 그저 국에 밥 한 그릇 찬하나 가 아닌 식당에 나오는 찬 여러 개를 똑같이 차려 주었고 밥 솥에서 정성스럽게 밥을 푸고 있었다. 나중에 제작진들은 실험카메라인 것을 밝혔고 식당 사장님들께 어떤 마음으로 밥을 내어줄 수 있었냐고 물었다. 사장님들의 대답에는 각자의 온기가 서려있었다.




‘아들 같아서,’ ‘부모님께서 돈을 달라는 사람은 거절해도 밥을 달라는 사람은 드리라고 했다’ ‘ 있는 사람은 너무 있고 없는 사람은 없는 세상인데 밥 한 그릇 주는 것이 어떠냐’ ‘밥은 각박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 우리네 온정의 의미일 것이다. 할머니는 저녁 무렵 아빠 엄마가 퇴근할 때쯤 한번 더 시계를 보며 묻는다. 가끔 기억은 가물가물해져도 우리 가족 모두가 아침, 저녁 먹는 시간만큼은 귀신같이 알아채신다. 그리고 할머니 본인이 밥 먹는 시간도 금방 알고 계신다. 시계가 아침, 점심, 저녁과 얼추 맞아떨어지면 할머니께서는 알아서 식탁 앞으로 와 나와 앉아계신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 시간을 감지하고 오늘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드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를 살아갔다는 의미이자 오늘 하루 시간대를 꼬박꼬박 기억한다는 할머니의 의미

나는 가끔 잔소리처럼 들리는 할머니의 밥 안부가 듣기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도 할머니의 밥 끼니 안부를 들을 수 있음에 우리 가족은 늘 감사한다. 오늘따라 식탁 위가 환하다. 할머니 웃음처럼 말간 소고기 뭇국과 어묵볶음, 그리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잡채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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