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 날
처음 무작정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아빠는 녀석을 방에 들이지 않았다. 천식과 알레르기가 있는 아빠에게는 강아지와 사람이 한 방에서 생활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아빠의 날 선 말에 순응하며 지냈다. 녀석을 무작정 데려온 것은 나였기 때문에 최대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동하도록 노력했다.
아빠는 평소에도 창틈에 낀 먼지나 집안 청결을 중요시하셨다. 그래서 다른 동물이 아빠의 이불에 들어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내가 데려온 흰색 뽀시 레기 녀석은 시간이 갈수록 털과 애교가 함께 자라났다. 아빠가 배나 사과를 깎기라도 하면 녀석은 반짝이는 눈망울로 아빠를 흠칫 쳐다봤다. 사각 거리는 서걱 거리는 칼 소리에 맞춰 녀석의 발걸음이 경쾌하게 움직인다. 녀석의 총총총 움직이는 그림자가 안방 문턱으로 넘어간다. 나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녀석에게 세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빠는 못 이기는 척 점점 녀석의 살가운 다정함에 빠져들어 이불도 조금씩 내주고 있었다.
강아지가 있는 집에서 털을 잡는 끈끈이, 돌돌이는 필수 아이템이다. 다이소에서 파는 6M이라고 적혀 있는 접착력 강한 타이핑제 검은 차렵이불 한 면에 군데군데 녀석의 털이 묻어 있다. 며칠 전에는 안방에서 녀석이 이불 위에 잔뜩 토를 해 놨다. 평소 같았으면 이게 뭐냐면 미간을 찌푸리며 잔뜩 화냈을 아빠의 목소리가 왠지 평온하다. 아빠는 한 참 말없이 녀석을 빤히 쳐다보더니 넌지시 말을 건넨다. 녀석이 밥을 빨리 먹어서 체한 거 아니냐며.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봐야 하는 건 아닌 건 아니냐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먼저 물어본다. 입버릇처럼 알레르기가 있다고 웅웅대던 아빠의 비죽 튀어나온듯한 말투가 들어갔다. 확실히 아빠는 변했다. 가끔 재채기를 할 때는 있지만 그래도 간식을 주며 눈 맞추기를 하고 손뼉 치며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는 우리 아빠. 흰색 뽀시 레기 녀석의 애교가 늘어날수록 아빠의 예민함은 줄었고 털과 몸집은 자라서 전보다 더 털이 날리지만 아빠는 더 많은 자리를 녀석에게 내어주었다. 언젠가 아빠와 허심탄회하게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아빠에게 물었다.
“예전에 얘 처음 왔을 때 생각나?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했잖아. 안방에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아빠는 말없이 이제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며 허허 웃음을 지으신다. 무엇이 아빠 마음을 이렇게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지게 했을까.
모처럼 날씨가 화창한 2월의 어느 날이다. 아빠와 나 그리고 반려견 딸기와 함께 집 근처 개천 옆을 거닐고 있다. 녀석은 뭐가 좋은지 양쪽 귀를 활짝 열고 꼬리를 곧추세운 채 나풀나풀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