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라일락 Sep 30. 2020

모기보다 무서운 사람 모기

잠 못 드는 한여름의 어느 날

  위이잉 소리에 곤히 잠든 내 신경이 곤두선다. 특히나 사람 피를 많이 빨아먹은 모기들은 어찌나 통통하고 또 재빠른지. 내가 잡으려고 손으로 툭 치는 찰나 이미 그들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여름이면 모기 잡는데 아주 이골이 난다. 전기 모기채, 모기향, 끈끈이, 자신들을 잡는 신상 제품들을 이미 알고라도 있는 것일까. 모기에게 물린 다음날이면 내 팔목, 다리 얼굴까지 붉게 달아 올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모기는 물리면 가렵기라도 하지. 나는 곧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다. 나보다 두어 살 동생이었던 J. 그녀는 나보다 어린데 생각이  깊었다. 무엇보다 아이 둘을 낳은 엄마였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자주 들려주었다. 내게 핸드폰으로 직접 편집해서 만든 아이들 동영상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했다. 핸드폰 속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의 웃음에 흠뻑 젖어 들어 싱긋 웃었다. J는 아이 아빠와 이혼을 했다고 했다. 나는 이혼의 사유에 대해서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렵게 친정식구들이 맡아서 기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줄곧 내게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곤 했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자마자 할머니 집에 맡기고 도망을 갔더란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미웠지만 아이를 낳아보며 본인이 낳았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하는 동생과 친해지며 우정 팔찌도 나누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구나'




  나는 종종 J가 자취하는 집에 갈 때면 그녀가  먹고 싶어 하는 우유, 초콜릿, 과자 등 필요한 것들을 한가득 사다 주었다. 밥을 먹을 때 밥값을 계산하기도 해 줬고 커피를 사주기도 했다. 소소하게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을 해 주고 싶어서였다. 먹는 것에 돈을 쓰는 건 별로 아깝지 않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주는 것이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J는 내가 글 쓰는 것에 대한 조언을 항상 해줬다. 동화를 쓸 때 혼자 벽보고 쓰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직접 읽게 해 보라고. 부족한 부분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듣고 고치는 것이 좋다고, 그게 정확하다고 말이다. 나는 J의 생일 때 아는 동생과 합작으로 케이크 파티를 해줬었다. J에게 도움이 되라고 예쁜 글귀를  캘리그래피 형태로 써 카메라 사진으로 찍어 선물하기도 했다. J는 생일이 제일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평생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받지 못해서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 챙겨줘서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어느새 내가 베푸는 것에 그녀는 의무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녀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람의 관계에 갑과 을이 있다면 나는 늘 알면서도 해주는 을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누군가를 믿으면 한 없이 믿는 나였기에. 






그것은 식스센스급 반전이었다. 반전은 곧 J의 지인이 나를 따로 불러 밥을 먹으면서 시작됐다. 내가 속고 있는 것 같아 말해준단다. 진짜 J에 대해 말해주겠단다. 이건 뭐 티브이에서 남편의 불륜녀에 대해 말해주겠다는 지인의 모습 같았다. 지인이란 사람의 목소리가 칼을 간 것처럼 비장했다. 말투에는 곧게 날이 서 있었다. 모든 건 거짓말이었다. J의 친정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 건 맞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단다. 


  처음 난 J의 지인을 믿지 않았다. 직장, 친구관계에서 이간질로 상처도 많이 받았고, 또 양쪽 말을 듣기 전까지 증거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건 삼십이 년간 인간에게 을로써 데어보며 얻은 결론이었다. 

J의 이야기는 실로 충격이었다. J와 아이들의 사이는 접근금지 보호조치 상태라고 한다. 또 J는 신용불량자라고 한다. 카드 대부분은 막혀 있어서 아이들 통장으로 돈을 받거나 빼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핸드폰을 바꿔준다며 신분증을 가져갔는데 핸드폰을 두 개나 개통시켜 하나는 본인이 쓰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J와 아이들이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J의 아이들이 남자 친구란 사람한테 맞을 때 방관을 하기도 했고 함께 때리기도 해서 그렇다고 한다. J가 말했던 모든 것들 그것들 중 대부분은 거짓말이었다. 

  처음 난 J의 지인을 의심했지만 그는 J에 대한 객관적 증거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증거를 믿지 않으면 증인들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눌러 확인시켜줬다. 마음 중앙에 쌓아 올렸던 J에 대한 믿음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J의 행동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슬픔과 비참함으로 포장하며 내게 연민을 느끼게 했던 J의 모습을  말이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들어 찌른 J란 사람.


  J는 끝까지 아니라며 내게 발뺌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그동안 베풀었던 호의, 그 안에 있던 모든 진심들이 거짓이었단 생각에 배신감이 솟아올랐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 한편에 쌓아 올랐던 신뢰. 사람에 대한 믿음을 쏙 빨아먹은 느낌.

  한 여름밤, 모기에게 여러 군데 물리면 버물리라도 바르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가버린 자리에는 불신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평소 용서를 잘하는 편이다. 그보다는 이번만큼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맞다고 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어땠을까? 내 마음은 누그러졌을까? 하지만 끝까지 우기던 J를 보며 나는 깔끔하게 안녕을 고했다. 다시는 사람 마음까지 침투하며 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나는 이제 모기를 잘 잡는다. 예전에는 손에 묻는 게 싫어 휴지나 종이를 사용해서 문질러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움직임만 보고 양손으로 착 소리를 내며 잡고 있는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전 13화 샴푸의 요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