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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Oct 05. 2020

철새처럼 직장인들이 이동한다

가을 한 귀퉁이에  서서 

  다큐멘터리에서 성우가 말한다. 새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번식과 기온 변화 그리고 먹이의 부족에 의해서라고

. 또는 여름철 내내 번식한 새들은 월동을 위해서 이동을 한다고 말한다. 철새들의 이동 방법은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들이 많이 없단다. 어디서는 이동루트를 기억했다가 라고도 하고 태양이나 별자리를 이용하기도 하거나 어미에 대해 학습된 방법으로 가기도 한단다. 역시 자연은 신비한 것. 



  가을쯤 되면 회사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또 떠나곤 했다. 내가 첫 회사를 들어가게 된 것은 추석 전 후다. 두 번째 회사도 추석이 오기 한 달 전쯤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 회사 생활 4-5년 차 되는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커리어를 쌓으려고 한다.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고, 자격증을 하나 정도는 더 따고. 사오 년 차쯤 되면 우리에게 자기소개서보다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와 커리어다. 실제로 내가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다. 2년을 다 채우고 3년을 다 채운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곳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업무가 여유로울 때쯤 여러 개 켜져 있는 창을 번갈아 보다가 흠칫 놀라던 과장님이 있었다.

“과장님 일 처리 다 됐는데요” 

라고 말을 하면 깜짝 놀라 켜져 있던 잡코리아를 숨기곤 했다. 눈썰미 좋은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다른 곳을 바라봤었다. 어떤 넉살 좋은 대리님은 일이 없는 한가로운 날이면 구직사이트를 대놓고 켜 놓은 채로 다음 회사를 물색하곤 했다. 이 모습은 흡사 다큐멘터리에서 본 철새들의 이동 준비를 하는 모습과 같았다.




추석은 이동 준비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요즘 추석은 추석 같지 않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취업 준비생들은 집에 틀어 박혀 자기소개와 이력서를 쓴다. 또 어떤 사람은 그때가 포트폴리오를 좀 더 세련되게 꾸밀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길고 긴 연휴가 돌아왔다. 회사를 호시탐탐 보고, 눈치게임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친구 S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너무 힘들다며 매일 아침 귀가 닳도록 이직을 외친다. 누가 보면 국가대표 이직 홍보대사인 줄 알 거다. 그러나 현실은 각종 구인 사이트에 돈을 내서 최상단으로 올라가는 기능을 이용했지만 이상한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고 한다. 친구 S는 내 기준으로 보아 열심히 사는 친구고 무엇보다 능력도 좋은 친구다. 

  첫 회사를 다닐 때 이렇게 많이 사람들이 이동할까 싶을 정도의 시기가 있었다. 인사팀 말로는 규모 확장이 되었다, 광고주 프로젝트가 많아졌기 때문에 채용도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냥 그건 허울뿐인 이유였다. 결론은 사람들이 많이 나가서 그만큼 또 다른 사람들을 뽑는 것이었다. 적은 연봉을 받고 늦게 까지 야근하는 디자이너들은 일 순위로 회사에서 먼저 떠나는 철새들이 됐다. 이 외에도 임신을 하면서, 육아휴직을 써 버리며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과장님들도 수 없이 많이 봐왔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들이 제각각이 었듯이”

작년 이맘때,  재작년 이맘때를 머리에 담아본다. 추석 연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나도 정확히는 10월에 회사를 그만뒀었다. 어디나 그렇듯이 나에게 백 퍼센트 맞는 일이란 것은 없다. 열에 아홉은 연봉 때문이었고 직무가 맞지 않아서, 제일 많이 그만두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다. 나는 그 시기 꽤 담담했다. 첫회사, 첫 사표. 대표가 바빠서 상무님까지만 서류 검토를 받으면 됐고 퇴사 처리는 깔끔하게 끝이 났다. 사람들에게 떠밀렸다니 보다는 정확히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 라는 자신감이 없어서가 이유였다. 나를 걱정해 주었던 대리님은 사람들은 원래 다른데 알아보고 그만둬야 되는 게 맞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런 건 내게 없었다. 나는 그냥 여행이나 좀 다녀오려고요 라며 말을 아꼈다. 




  퇴사를 하고 호수 근처 카페로 친구와 드라이브를 왔었다. 회사 체질이 전혀 아닌 친구. 남들처럼 회사를 다녀보려고 회사에 갔다가 하루 동안 생활을 해보고 과감하게 나온 친구다. 지금은 플로리스트로 제 가게를 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이 곧 호수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철새들이 브이자를 그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친구는 징그럽다고 했지만 나는 신기했다. 철새들이 내게 메시지라도 주는 것처럼 브이자를 그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호수 위 철새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월동을 준비하러 아니면 새로운 서식지에 둥지를 틀러 가나? 음 목적이 있을 것이다. 



꼭 이동에 이유를 만들 필요는 없다.


 친구 D와 브런치를 먹고 난 후 하늘에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있었다. 딱 걷기 좋은 날씨였다. 친구가 이제 뭐하면서 살 거야?라고 물었다. 사실 퇴사를 했을 때 뭘 하면서 산다기보다는 이곳을 벗어나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친구 D에게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집에 둥지를 틀 거다 라고 대답했다. 꼭 계획이 있어야 이동하나. 마음이 따르는 대로 일단은 쉰다음 다음 걸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일단 내 마음을 돌봐야 일도 할 수 있다. 나는 내 결정이 옳다고 믿었다. 


  매일 저녁 밤공기 냄새만 맡았는데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하늘이 예뻤다.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구름, 호수 주변에 피어있는 들꽃들, 나는 그것들을 오래도록 두 눈에 담았다. 물을 머금듯이 눈으로 풍경들을 가뒀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파란색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호수를 연장시켜 놓은 것처럼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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