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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Feb 20. 2020

강아지가 끊임없이 내 팔을 핥는 이유


  또 차였네. 혼잣말을 하며 배게 속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고있던 밤이었다. 내 사소한 언행들과 행동들이 쌓여 더 이상 맞지 않는다나 뭐라나. 나는 애꽃은 강아지만 보며 괜한 말을 늘어 놓았다. 밤이 깊어지면 이 하늘아래 기억들도 가라앉으리라 생각했지만 쉽사리 내려가지 않았다. 가슴에 뭐 하나 얹힌 것 마냥 사겼던 사람이 했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강아지가 내 눈을 흘깃 보더니 또 쉼없이 핥기 시작한다. 내가 10년전에 데려올 때부터 하던 행동이다. 내가 뭘 하건 어떤행동을 하던지 오분에서 십분정도는 마사지를 해주듯이 핥는다. 어떨때보면 내 기분을 알고 있는 것처럼 위로하듯이 핥아준다. 단순히 좋아서 핥는게 아니라 앞발로 팔등을 꼭 누른채 눈을 지긋이 감은채로 정성스럽게. 혀가 일분에 수십번씩 일정한 형태로 미끄럼틀 타듯이 움직였다. 한달정도간은 지켜보다가 이 행동을 하게 하면 안될 것 같아서 강하게 안돼라고 소리쳐 보기도하고 억지로 팔을 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영락없이 강아지의 시선은 내 살갗에 가 있다.


  도저히 몇 년간 왜이렇게 핥는지 영문을 모른채 9년간 강아지를 키우던 어느날이었다. 강아지가 자궁충농증에 걸려 당장 적출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나는 부리나케 엄마에게 전화와 문자로 상황 설명을 했다. 의사선생님과의 확실한 면담을 듣기 전까지도 내 가슴은 쿵쿵 뛰었다. 그래도 먹어야 강아지를 돌볼 수 있기에 병원 근처에서 저녁으로 김밥을 먹는 둥 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강아지를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중성화 하지 않은 암컷 강아지들은 그럴 수 있어요”




나는 수술하고 회복하면 금방 좋아질거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겨우 안심했다. 하루동안 텅 빈 집은 소리없는 빈 껍데기 같았다. 강아지의 온기가 가득했던 방안에는 벽을 타고 녀석의 냄새, 체온이 웃돌았다. 녀석이 좋아하던 쿠션들과 밥그릇 주변, 거실통로를 지나니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여기저기 비집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녀석만 없다. 왠일인지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그 슬픔은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나는 실연의 아픔과는 다른 결의 슬픔이었다. 그 동안 내 방 한쪽구석 녀석의 자리에 앉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만 했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회사 때문에 힘들었을 때, 남자친구 한테 차였을 때, 내 인생은 왜 그럴까 신세한탄을 했을 때. 아무말 없이 내 엷은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만 주던 녀석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때마다 나는 강아지에게 내 말을 알아듣니 물었고, 강아지는 내 팔에 아무말없이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조용히 핥아줬다.


 회사에서 회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동물병원이라는 글씨가 떴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의사선생님은 녀석이 새끼를 낳은적이 있냐고 물었다. 수술자국이 있긴한데 전문적이지 않아서 군데군데 알 수 없는 분비물이 보인다고했다. 그러고보니 딸기를 처음 데려왔을 때 배사이가죽이 얼기설기 엮여있는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새끼를 뺀 것이라니? 그럼 녀석의 새끼는 어디있는것일까……. 선생님은 확실하게 녀석이 새끼를 출산한적이 있다고 했다. 강아지가 핥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강아지는 새끼를 정상적으로 빼낸게 아닌 모습으로 보여진단다. 아마 강아지공장같은데서 새끼를 바로 뺏을 것 같다는 것이 추측된단다. 그래서일까. 얼굴주변이나 살갗을 조금이라도 대면 핥으려고 했던이유……. 조금이라도 관심 받고 싶어서. 그때 새끼들과 나누지 못한 정을 주인과는 꼭 나누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마취에서 깬 내 강아지가 나를 보더니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었다. 순간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내 얘기만 들어주던 강아지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항상 내 힘들고 아픈얘기만 묵묵히 들어주면서도 좋다고 핥아대던 녀석의 아픔을 나는 알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근데도 녀석은 좋다며 계속 꼬리를 흔든다. 수술을 하고 나와도 씩씩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나는 싱긋 웃는다. 그날 밤 나는 녀석에게 하지말라는 말대신 조용히 고개를 갖다댄다. 녀석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핥기 시작한다. 창밖 너머로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밤하늘위에 총총총 떠있는 별들이 왠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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