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국의 아파트 재개발
프랑크푸르트는 서울에 비한다면 그다지 번잡한 도시가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들뜬 설레임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는 큰 도로만 살짝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는 새침하고 조용하다. 아무리 기뻐도 입가에 살짝 미소만 머금는 고상한 엘리트 중년 남성 같달까. 그래서 언뜻 다가가기 어렵고 조금은 차가운 듯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돌아설라 치면 무뚝뚝한 손으로 가볍게 내 손을 살짝 쥐어준다. 보기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곳이다. 단지 너무 말끔해 보이는 겉모습 때문에 가려져있을 뿐이지.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간다니 미국인 지인 부부가 일러주었다. “Wacker’s coffee shop”에는 꼭 들르라고. 거기 커피 정말 맛있다고. 맛있는 커피에 나름 진심인 사람들이라, 이들 취향이라면 왠지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눈에 띄게 큰 가게는 아니어서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아니, 그 집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며. 프랑크푸르트라면 괴테 생가도 있고, 유럽 중앙은행도 있으니 가보라 할 법한데, 콕 찍어 그 카페를 굳이 가보라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카페 안에 들어서니 사람은 가로로, 커피는 세로로, 길게 산더미를 이룬다. 내부는 요즘 소위 말하는 '힙'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매우 오래되고 전통적인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를 시작한 연도가 무려 1914년이다. 그 시절이라면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겪으며 1919년에야 있을 3.1 운동의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갔을 때다. 그러고보니 그들은 참 옛날부터도 뼈대 있게 잘 살았구나. 그리고 한국은 정말 빨리 컸구나.
카운터 오른쪽에는 커피 포대들이 아무렇지 않게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냥 밀가루나 쌀 포대처럼. 고객에게 팔 커피빈들은 카페의 트레이드마크인 금색 포장지에 싸여 종류별로 쌓여있다. 가게 밖까지 늘어선 많은 사람들은 관광객 같기도, 현지인 같기도 하다. 특정 연령대에 집중된 것도 아니다. 그들 안에서 집단적인 공통점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섞인 채, 북적이는 좁은 공간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커피 하나를 시켰다. 조금 기다리자 단순하게 생긴 유리컵에 커피가 담겨 나온다. 이제는 사람들을 비집고 유리컵과 소서를 든채 자리를 찾아 기웃거려야 하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카운터 뒤편을 돌아 자리가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어떤 할머니 한분이 나를 향해 손짓하신다. 자기 옆의 좌석을 톡톡 치며 여기 앉으란다. 세상에 독일 카페에서 합석이라니. 할머니는 나이 차이가 40년도 더 날 듯한, 국적도 모를 이방 여자에게 자리 한편을 내어주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집 커피는 엄청나게 맛있다고. 당신은 곧 자리를 뜰 거라고. 나는 고마움을 표시하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겨울날 묵직한 라테의 느낌이 나무기둥처럼 든든하다. 그리고 이렇게나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커피만 팔아온 이 카페를 생각해본다. 나이 칠팔십에도 카페에 앉아 젊은이들과 뒤섞여 커피를 마시는 게 아무렇지 않은 일상인 그들의 문화도 생각해보았다.
또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 앉아서 했던 그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카페엔 온통 젊은것들로 가득하다. 사람도, 인테리어도, 심지어 디저트도. 지금 유행하는 것들에 딱 맞춘 신상이다. 문득, 서울은 20대에서 30대 초반 젊은 사람들이 짝짓기 하러 돌아다니기에만 좋은 도시다, 이에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나 연령대의 사람들은 할 게 없이 밀려나는 곳이다라는, 어느 프랑스인 건축가의 볼멘 글 한구절이 떠오른다. 이 나라는 새로운 것, 젊은것을 숭배한다. 오래되거나 낡은 건 개선의 대상일 뿐이다. 나름의 아름다움을 살려 보존하려는 생각같은 건 사치다. 아니, 어쩌면 근현대사 이후로는 보존할 만한 가치 자체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가난하고 초라했던 과거의 증거 사진은 다 없애버리겠다는, 드라마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주인공 여자들처럼, 오래된 건물들은 사정없이 찢겨 불에 태워져야 했다. 건물들만 그런게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동호회 가입조차 나이 제한이 붙는다. 몇 세 이하일 것. 전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오래된 것이라면 철벽 치며 배척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마치 트라우마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 동네엔 70-80년대에 지어진 듯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요즘 짓는 아파트들과는 달리 5층 이내 낮은 높이에 예쁜 지붕까지 있었다. 콘크리트가 아닌 벽돌로 된 벽은 담쟁이넝쿨들이 자라 뒤덮고 있었다. 아파트 준공했을 땐 가녀린 묘묙에 불과했을 나무들은 건장한 성인 몸통 하나 정도는 거뜬히 넘을만한 두께로 자라 숲을 이뤘다. 그곳을 걷고 있자면 아파트 단지 안이 아니라 공원 안을 걷는 것 같았다. 걷다 고개를 들어 높이 자란 나무의 꼭대기를 바라보면 그 사이로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이 황홀감을 주었다. 철마다 바꿔가며 흐드러지게 피는 단지 안의 꽃들은 삭막한 도심에서조차 계절의 오고감을 알게 해 준다. 이 동네에 처음 이사와 버스를 타고 앞을 지날 때, 한국에 어쩌면 이런 곳이 다 있는지 감탄했었다. 외관이 마치 프랑스나 어느 유럽 시골마을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곳이 그저 오랜 시간 재개발되지 않은 '한국식' 옛날 아파트였다는 것을 알고 꽤 놀라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실용적 가치가 잘 안 보이는 것은 너무도 쉽게 버리는 결정을 한다고. 그 실용적이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도 못하면서. 때로는 주요 목적에 부합하지는 않아도, 편리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세월을 알게 해 주고, 추억을 생각나게 하고, 자연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우선순위 아래로 밀어내고 밀어내다보니, 결국 인생에 실용적이지 않은 '장식적인 것들'은 하나도 안 남게 되었다. 도시의 온갖 편리함을 다 누리면서도 이곳 인생들이 건조함에 질식해가고 있는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
재개발이 마무리되면서, 그 낮고 정겨웠던 건물들은 2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은 아파트 빌딩들로 대체되었다. 어느 틈엔가 짙은 회색의 효율적인 시멘트 벽들이 서로 경쟁하듯 무심하게 솟아있었다. 지붕과 처마가 없기에, 멀리서 바라보면 길쭉한 시멘트 덩이를 콕콕 찔러 구멍을 낸 다음 길게 세워놓은 도미노 같다. 사람이 만들어준 비둘기 집, 혹은 자연도감에서 보았던 어떤 개미들이 만든 탑 같기도 하다. 웅장했던 나무들은 온데간데없고 여리여리한 묘목들이 대신 들어서 있다. 삼십 년이란 시간이 다시 리셋되었다. 이 단지의 나무들이 자라고, 사람 냄새가 나고, 세월의 결이 입혀지기까지 또 그만큼의 시간이 들 것이다. 재개발을 하더라도 예전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는 방법을 찾는 건, 편리한 상가와 널찍한 주차장,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높은 담을 짓는 것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지나치게 비싸고 '비효율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비효율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예전 파리 여행에서 묵었던 숙소에는 아주 오래된 화장실 변기가 있었다. 그 변기는 크기가 작았고, 특이하게도 커버가 나무로 되어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니, 몇 백 년 전 나폴레옹 시대에 만들어진 화장실이라 시에서 유산처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바꿀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니. 그러니까 몇 백 년 전의 사람들이 앉았던 나무 변기 위를, 그 집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앉고 또 앉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이걸 원테이크로 찍어 빠른 속도로 돌리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그러고 보니 그 지역의 건물들 자체가 몇 백 년쯤 된 것들이다. 불편함도 있지만, 또한 여러가지 마음의 울림, 생각들이 있었다. 화장실도 오래되면 문화유산이 되는 곳이 있었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의 백 년 넘은 커피숍에 앉아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다. 백년묵은 사골느낌이 커피에서 난다. 원두를 사가고 싶어서 한참 고민하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딱 맞는, 계피향이 추가된 원두를 골랐다. 과연 정말 맛있었는데, 원래 그 집 커피가 맛있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디션이라서인지 더 독특했다. 한국으로 가져와 겨울 내내 아껴가며 마셨고, 다른 한 봉은 그 카페를 추천해준 미국인 지인 커플에게 건네주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다고 인사하면서. 기대치 않은 선물을 받은 그들은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내 손을 잡고 거칠게 악수까지 했다. 어느 집 커피 향이 너무 좋아서, 잊지 못해서,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고 그렇게나 기뻐하는 모습은 난생 처음 보았다.
(Wacker's Kaffee Geschäft GmbH)
Kornmarkt 9, 60311 Frankfurt am Main,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