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유정도 하지>를 읽고
여자들은 결혼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결혼하면 원래 있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으로 바꿔야 하는 법은 없지만, 결혼 전에는 한 여성으로 취급받았다면 결혼 후에는 여성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먼저 받아들여진다. 특히 아이를 낳게 되면 여자의 이름은 거의 지워지고, 평생 누군가의 ‘엄마’로서 살아가야 한다. ‘아줌마’로 불리는 일도 더러 있다. 엄마로서 자식을 다 키워놓고 나면 여자는 ‘할머니’가 된다.
누군가는 ‘호칭이 바뀌는 것 뿐 아니냐. 예민도 하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름 대신 주어지는 엄마/아줌마/할머니 라는 단어는 정형화된 여성상 안에 여자들을 가둬놓는다.
‘엄마’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할머니’ 라는 단어는 더 그렇다. 손주를 강아지라고 부르며 예뻐해야 하고 손맛은 기가 막히며 또 손은 무지막지하게 커서 손주가 배고프다는 말을 하면 ‘내 새끼가 아사 직전에 있다’로 받아들인다는 밈도 존재할 정도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할머니’에 관한 밈이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나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최유정은 그런 정형화된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 어머니는 그 말을 싫어했다 . 현모양처 , 알뜰한 당신 , 어머니 손맛 같은 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와 노인이 합해진 의미에서의 할머니로만 대해지는 것 역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 희생과 헌신 , 고향의 이미지 , 경제적 무능 , 부지런함과 절약 , 쇠약함과 퇴행 , 그리고 자애라거나 지혜로움 같은 미덕까지 . 어머니는 힘들게 살아온 것은 인정을 하되 누구에게도 그것을 동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
시대적 한계 때문일까, 전반적으로 유정의 삶을 들여다보면 다른 여성들과 크게 다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아이를 다섯이나 혼자 길러 책임지고, 딸과 며느리의 출산을 돕는 헌신적인 어머니.
그런 현모양처 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유정은 ‘나’의 초등학교 책가방을 살 돈으로 비싼 수영복을 사 입고, 김치 등의 한국 음식에는 소질이 없는 모습도 가졌다. 이는 자식이 먹고 싶은 짜장면을 사 먹이며 자신은 짜장면이 싫다고 굶어서까지 내 자식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충돌되는 지점이다.
만약 유정이 90~00년대에 태어난 인물이었다면, 비혼 비출산을 다짐하는 여성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다양한 최유정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현대 사회가 얼마나 여성들의 서사를 단어로써 압축하고 강요했는지 고발하는 동시에, 주제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즐겁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노래를 삽입해 작품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 수도 있구나. 작가는 꼭 하이든과 같은 재능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가인 하이든은 타고나길 성정이 유쾌한 사람이라 그의 음악에는 어린 아이와 같은 발랄함과 유쾌함이 묻어 있는데, 이를 두고 하이든은
‘하느님이 내게 유쾌함이라는 선물을 주셨는데, 이를 표현하지 않고 살아가면 그것이야말로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은 유쾌함을 동경하고 또 사랑해서 그것이 되고 싶어진다. 나의 고통까지도 적당한 유쾌로 승화시켜 나와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하고 세상을 여행했다가 가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