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농담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을 읽고

by 서유진


사진 1. 자정의 픽션 뒷면. (디자인이 다소 구리지만, 결코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지만, 살아가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다.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을 읽으며, 고등학교 때 수능 기출 문제집을 풀다가 읽게 됐던 소설인 서영은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떠올렸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소설 속 주인공은 월남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고 돌아와 인생에서 극도의 무력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어느 날, 주인공은 창밖의 공터를 내려다보다가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월남전에서 죽은 아들의 훈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훈장을 가져다 공터에서 찾은 것처럼 꾸며 노인에게 건넨다. 그러나 노인은 노여움과 경멸에 휩싸인 얼굴로 돌아서서 가버리고, 주인공의 “나는 정말 바보였었다.”라는 독백으로 소설은 끝난다.

노인에게 있어서 죽은 아들의 훈장을 찾는 일은 ‘사막을 건너는 법’, 즉 삶의 무의미함에서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농담은 삶에서 무의미하다. 하지만 농담이 없으면 삶도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삶 속에서 노인과 소설 속 부부는 인간이기에 실존이 본질에 앞선 존재다. 그들의 존재에 주어진 선험적 의미도, 당위성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피투의 존재에서 기투의 존재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허구의 당위성을 부여했고,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된 것이다. 『자정의 픽션』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야기 속 이야기인 멸치들 역시 마찬가지인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멸치들은 살기 위해 힘을 합쳐 도주에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멸치도 존재한다.


“나는 충분히 행복해. 성공과 실패는 나중 문제야. 왜냐하면 잠시나마 이 말라비틀어진 머리로 무언가를 꿈꾸었기 때문이지. 내 정신은 이미 저 남해를 유영하고 있어. 그런 벅찬 기억은 육신이 개펄로 돌아가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아.”



세속적인 가치로 판단했을 때, 이야기 속 부부는 ‘성공한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루의 대부분을 마트에서 멸치를 팔며 보내지만, 막상 뼈빠지게 일하고 쉬러 도착한 집에는 수제비 국물을 우릴 멸치 한 줌도 없는 형편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둘 중 아무도 “당신은 대체 그런 생각을 왜 하는 거야?”, “의미도 없는 대화를 우린 왜 지속하고 있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허구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 부부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그들이 즐거웠기 때문에, 독자도 덩달아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만들어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유는 터무니없는 것일지라도, 자본주의 세상의 논리에 따를 때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전혀 상관없다.

당신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가치 있는 것이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우리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