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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매트를 바꿨는데, 나 망한 듯!

좋은 아이템을 샀는데, 왜 운동이 더 어려워지지?

by 정벼리

요가원에 나가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간간히 언급했듯 몸을 쓰는 능력은 아주 똥이다. 여전히 많은 아사나를 제대로 따라 할 수 없다. 이쯤 되면 나는 여기까지인가 생각하고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을 고려해 볼 만도 한데, 어쩐 일인지 요가원은 꾸준히 나가고 있다. 오히려 도대체 내 몸뚱아리는 뭐가 문제여서 이렇게 실력이 늘지 않나 싶어, 몇 달 전부터는 개인 레슨도 한 번씩 받고 있다.


1:1 레슨을 받으면서 든 생각인데, 나는 지금껏 나의 신체에 대해서는 참 무지하게 살아왔더라. 내가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아픈지,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힘을 쓸 수 있는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전거근, 장요근, 대흉근, 견갑거근 등 이름도 생소한 근육들을 사용하려 노력하며, 매번 눈이 동그래져서 묻는다. 사람이 거기에 힘을 줄 수가 있다고요? 또 골반각도, 갈비뼈의 바른 위치들을 찾아가며 다시 한번 눈이 동그래진다. 그럼 저는 40년을 잘못된 자세로 살아온 거네요? 인내심 넘치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차근차근 내 몸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새롭게 배워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 요가 좀 좋아하나 봐!




요가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요가원에 비치된 공용 매트를 사용해 왔는데, 슬슬 매트 욕심이 생겼다. 자신만의 매트를 촤르륵 펼치고 수련준비를 하는 고수 회원들을 틈틈이 곁눈으로 지켜보다가, 요가매트 구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소재의 요가매트 중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것은 코르크 매트였다. 일단 예쁘잖아? 바닥에 깔아 두고 차투랑가를 하면 코 끝에 코르크 향이 훅 끼칠 것만 같고, 그럼 기분도 엄청 좋아지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가원에서 코르크 소재 매트를 깔고 수련을 하는 회원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조심스레 물어봤다. 왜 요가원에는 코르크 매트를 쓰는 분이 없을까요? 선생님께서도 긴 시간 요가를 해왔지만 코르크 매트를 사용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친환경 소재이기는 하지만 접지력이 좋지 못해 초보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금방 마모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무난하고 대중적인 고무매트를 추천해 주셨다.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G사의 5mm 오리지널 고무매트를 사서 수련을 해왔다. 고무층이 바닥과 매트를 착 붙여줘서 밀림이 거의 없고, 매트 상단 코팅 부분도 손과 발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이전에는 균형감과 힘이 부족해서 기우뚱거리며 잘 수행하지 못한 아사나도 새 매트 위에서는 얼추 따라 할 수 있었다. 오, 신세계! 역시 운동은 장비발이라며, 극한의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고무매트에도 단점은 존재했다. 땀이나 화장품이 매트에 묻으면 그대로 얼룩이 져서, 닦아내는 것으로는 지워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고무 소재 특성상 세탁은 할 수 없다. 처음에는 고운 색감을 뽐내던 매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얼룩이가 되어갔다.


새로 하나 사야 하나 고민을 할 무렵, 그맘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된 회원님이 PVC 소재의 요가매트를 추천했다. 기왕 매트를 새로 살 예정이라면, 요가매트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M사의 프로 매트를 구입하라고 말이다. 한 번 길들이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가져, 실제 제조사에서도 평생 보증제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쿠션감과 접지력을 동시에 얻을 수 있고, 땀이나 화장품 얼룩도 비교적 쉽게 지울 수 있다고. 게다가 고무매트는 접지력이 너무 좋아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아사나 수행이 가능해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며, M사의 매트 위에서 이제 자신의 힘으로 자세를 만드는 연습을 해보라는 충고도 함께 곁들여졌다.


두둥. 평소에도 귀가 창호지처럼 얇아서, 남편으로부터 종종 세상사람들이 다 당신 같으면 물건 팔기 참 쉽겠다는 놀림을 당하곤 하는 나다. 회원님의 청산유수 같은 말에 나는 그만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어머어머, 이 브랜드에서 마침 한정판 매트를 판매하고 있지 뭐야? 밤하늘을 옮겨온 듯 영롱한 미드나잇 색상에 눈에서 하트가 뿅 발사됐다. 앞으로 평생 정착할 인생매트를 찾았다며, 나는 그 자리에서 거금을 들여 새 요가매트를 구매해 버렸다.


꽤 많은 보조도구를 필요로 하는 새 요가매트, 언젠가 내가 너를 길들일 수 있겠지?


하지만 충동구매 후에는 늘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줄줄이 따르기 마련이다. 거대한 택배상자에 담겨 도착한 명품 요가매트는 미끄러워도 너무 미끄러웠다. 바닥과 매트는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내 손과 발만 주르륵 미끄러졌다. 다운독 자세를 취하면 ab슬라이드라도 타는 듯 손과 발이 앞뒤로 밀려났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당혹감에 어쩔 줄을 모르며 수련시간이 얼렁뚱땅 가버렸다.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아니, 벼리님. 매트 사기 전에 물어보시지. M사 매트는 길들이기 과정이 아주 어렵고 오래 걸려요. 특히 벼리님처럼 손발에 땀이 있는 분들은 더 미끄러질 거예요. 이걸 어쩐담!"


알고 보니 M사의 매트는 출고 당시에는 얇은 코팅 층을 입혀두는데, 이 코팅이 벗겨질 때까지는 충분한 마찰력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계속 사용을 하다 보면 서서히 코팅이 벗겨지며 길들여지지만, 그 과정을 빠르게 단축하기 위해 제조사에서는 만 24시간 이상 태양빛 아래에서 굵은소금을 뿌려 절이는(!) 절차를 거치기를 추천한다고. 아니, 요가매트가 배추도 아니고 소금에 절인다고요? 그제야 부랴부랴 인터넷을 더 찾아보니, M사 매트를 구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소금 절이기 과정을 거치고 있더라. 선생님은 매트를 집에 가져가 주말 동안 적어도 48시간 이상 굵은소금을 팍팍 뿌려둘 것을 권했다.


해가 잘 드는 앞베란다에는 이런저런 화분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씩 하나씩 구석으로 옮겨두고, 주말 동안 매트 절이기를 할 공간을 확보했다. 남편은 고생도 사서 한다며 낄낄 비웃다가 기어이 등짝을 한 대 얻어맞았다. 두 번의 밤이 지나고, 뿌려둔 소금을 닦아내는 일도 보통은 아니었다. 젖은 수건으로 닦고 또 닦아내도 소금 알갱이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아 몰라, 쓰다 보면 제가 녹든지 사라지든지 하겠지.




소금 길들이기를 마치고 다시 요가원에 매트를 들고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이 진정한 개시일이라며, 혼자 마음이 들떴다. 떠오른 마음은 금방 파사삭 사그라들었다. 48시간이 넘도록 소금칠을 해두었건만, 새 매트는 아직도 미끄러웠다. 빈야사 시퀀스를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비라바드라 자세에서 발이 뒤로 주욱 밀렸다. 한 시간 동안 매트 위에서 허우적대고 나니, 온몸의 기운이 쪽 빠졌다. 코가 빠진 채 요가매트를 말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쓰다 보면 언젠가 미끄러짐이 잡힐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그럼! 인생매트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언젠가 코팅이 완전히 벗겨지고, 나의 힘과 중심도 더 단단해질 거라 희망회로를 돌리면서도 당장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다시 쇼핑에 나섰다. 음, 솔직히 쇼핑의 쳇바퀴 굴레에 갇힌 것만 같았다.


우선 발의 미끄러짐을 잡기 위해 미끄럼방지 도트가 찍힌 요가양말을 구입했다. 양말을 신고 해 보니 한결 나있지만, 손의 미끄러짐은 여전했다. 그래서 매트 앞쪽에만 깔 수 있는 작은 요가 타월을 구매했다. 요가 타월은 양말처럼 미끄럼방지 도트가 찍힌 종류와 보들보들한 극세사 재질 두 가지가 있었다. 당장의 미끄러움에는 도트가 찍힌 것이 나을 것 같았지만, 나중에 매트 길들이기가 끝난 뒤에는 애물단지가 될까봐 오래오래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트가 없는 재질로 구매했다. 양말과 타월을 구비하고 수업에 나가보니, 중반 이후 손발에 땀이 나면 확실히 접지력이 생기는데 수업 초반 손이 건조할 때는 여전히 밀림이 있었다. 수건에 물을 뿌리고 시작하면 좋다고 하여, 휴대 가능한 작은 스프레이 공병도 구매했다.


이상한 일이다. 비싸고 좋은 매트를 구입했는데, 왜 갈수록 필요한 용품이 점점 늘어가는 거지? 운동 가방이 심각하게 무거워졌다. 아, 비싸고 좋은 나의 새 매트마저도 이전 고무매트에 비해 약 500g 정도 더 무게가 나간다. 힘이 길러진다는 것은 무거운 운동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힘이 세진다는 의미였을까? 어이없는 상황에 스스로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누굴 탓하겠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충동구매를 해버린 내 탓인걸.


하지만 상황에 지지 말고 오늘도 씩씩하게 운동을 나가보련다. 어찌 되었건 매트 위에서 깊은숨을 쉬며 낯선 방식으로 힘을 쓰는 시간은 여전히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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