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번거롭고, 달리 보면 별 것 없고.
우리 가족은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가는 일도 잦고,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오면 곧장 다음 여행 계획을 궁리하고는 했다. 그런데 호두가 우리 집에 오고 난 뒤로, 여행은 조금 다른 의미가 되었다. 가방을 싸는 일보다 더 큰 숙제가 생겼다. 바로 호두를 어떻게 케어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호두가 집에 왔을 때 우리 가족은 이미 그다음 달까지 두어 개의 여행일정이 잡혀있었다. 강아지가 없을 때 예약해 둔 곳이니, 하나같이 반려견을 동반할 수 없는 장소였다. 취소할 수 있는 곳은 과감히 취소했다. 취소가 불가능한 여행을 앞두고는 동네에서 강아지를 이삼일간 돌봐줄 수 있는 펫시터를 구했다.
이후로 어딘가 놀러 갈 때에는 반려견 동반이 되는지 우선 확인해 보고는 하지만,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는 장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쩌다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다 해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단순히 ‘같이 간다’는 말이 ‘편히 간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호두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제대로 실감했다.
강아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준비 단계부터 만만치 않다. 배변패드, 사료, 간식, 물그릇, 밥그릇, 켄넬, 방석, 애착인형, 산책줄, 물티슈, 하네스와 리드줄, 배변봉투, 여분의 수건까지. 호두 짐만 한 가득이다. 뭐 하나 두고 가면 없는 대로 대충 지내기가 불가능하니, 짐 챙길 때부터 목록을 만들어 몇 번씩 확인하는 편이다.
이동수단도 만만치 않다.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는 강아지를 전용 켄넬에 넣어야 하고, 체중이나 크기 제한도 있다. 일부 노선은 아예 반려견 동반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호두는 작은 강아지라 켄넬에 넣으면 일부 기차 여행이 가능하지만, 호두는 켄넬 안에서 얌전히 있질 못한다. 낯선 공간에서 짖거나 안아달라고 낑낑거리면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래서 아직까지 장거리 대중교통은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차를 타고 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관광지나 식당 중에는 여전히 반려견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다. 결국 호두가 혼자 있어야 하는 순간이 생기곤 했다. 함께 있어도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아기 강아지를 혼자 낯선 방에 남겨두면, 호두는 불안에 떨며 짖거나 낑낑거려 주변에 피해를 끼칠 것이다. 그리고 돌보는 사람이 없는 동안 호두가 숙소 물건을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그게 무슨 민폐일지. 여행지에 호두를 데려가도 때에 따라 현지 애견 호텔에 몇 시간 단위로 맡겨야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후로는 강아지 동반이 여행의 주된 콘셉트가 아닐 경우, 호두는 집 근처 익숙한 펫시터 혹은 애견 호텔에 맡긴다는 원칙을 세웠다. 호두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그 편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볼 생각이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알고 보면 전국 곳곳에 반려견 동반 여행지가 참 많다. 조금만 교외로 나가봐도 ‘애견 펜션’, ‘애견 테마파크’, ‘애견 수영장’ 같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활양식이 이만큼이나 자리 잡았구나 새삼 느껴진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모든 강아지를 편하게 대하지는 못한다. 호두를 키우며 강아지 공포증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낯선 강아지들이 다가오면 순간 몸이 굳는다. 그래서 주말에 어쩌다 애견카페나 애견놀이터 같은 장소를 방문하게 될 때에는, 대개 남편과 아이가 호두를 데리고 나가고 나는 집에 혼자 남곤 한다. 이런 나에게 본격 애견 펜션은 아직까지 심리적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에 다녀온 강원도 S 리조트는 꽤나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국내 애견동반 숙소 중에서도 ‘정점’이라 불릴 만큼 유명해서, 우리 가족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거대한 리조트 시설 안에 일부 객실을 ‘애견 동반존’으로 운영한다. 애견 동반 객실에는 강아지를 위한 식기, 전용 수건, 배변패드, 물티슈, 강아지 침대, 발판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강아지 여행 짐이 확 줄어드니 떠날 때부터 손과 발이 가벼웠다.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딸아이는 어린이 훈련사 체험을 신청하여 강아지 훈련시키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배워오기도 했다. 한 번 입장권을 끊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 수 있는 넓은 잔디 운동장도 있었다. 남편과 아이는 호두를 데리고 잔디 운동장에서 노는 동안, 나는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한 휴식을 즐겼다. 애견 동반 구역을 벗어나면 이런저런 먹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이고, 리조트에서는 손님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있을 수 없는 시간 동안 강아지를 돌봐주는 보딩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건 애견 동반 골프 라운딩이었다. 호두가 잔디밭 위를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상상하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 장대비가 쏟아져 라운딩이 취소되어 동반 골프는 즐기지 못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서 강아지까지 온 가족이 함께 라운딩을 즐겨보자며 아쉬움을 달랬다.
아이가 생긴 뒤로 여행을 가면 구석구석 많은 곳을 돌아다니거나, 늦은 밤까지 술 한잔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려워졌다. 거기다 강아지까지 생기니 그 제약이 한층 더 늘어난 느낌이다. 여행에서의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그렇지만 너무 책임감에만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호두를 키우는 일과 나의 삶을 즐기는 일이 반비례 관계로 전락해 버리면 저 조그만 털뭉치를 향한 마음의 방에 사랑을 채워 넣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 내가 즐거워야 호두도 안정적으로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견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할 수 있을 때에는 함께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안전하고 편안한 호두만의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우리는 조금 불편하고, 조금 번거롭지만, 여전히 함께 떠날 방법을 궁리한다. 이 똥강아지가 조금만 덜 낑낑거려도 같이 다닐 수 있는 곳이 늘어날 텐데 말이야.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정숙한 강아지 만들기를 위한 찰떡같은 훈련법 어디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