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하는 강아지랑은 안 놀아!
호두는 입맛이 아주 저렴한데, 동시에 까탈스럽다. 사람으로 치면 인스턴트 햄과 소시지만 찾는 초딩입맛이라고 해야 할까? 입에 안 맞는 사료는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영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채소는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지? 정말 이상한 녀석이야.)
호두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에는 R사의 퍼피용 사료를 먹고 있었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위한 스타터 단계였다. R사 사료는 범용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료인데, 강아지들의 기호성이 아주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호두 역시 사료통 뚜껑만 열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서 밥을 달라며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사료를 담아주면 개, 아니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너무 폭풍흡입을 하는 통에 목에 걸릴까 무서워 밥그릇을 쓰지 못하고 바닥에 사료를 넓게 뿌려줘야 할 정도였다.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강아지는 맛을 냄새로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R사 사료의 묘한 냄새는 아주 코를 찌르는 수준인데, 내 기준에는 살짝 역한 느낌이다. 끼니 때마다 퍼지는 사료냄새가 신경에 거슬렸다. 게다가 강아지 보호자들 사이에서 R사 사료는 '햄버거' 같은 사료로 통한다. 기호성은 끝내주지만 가격에 비해 성분이 그렇게 훌륭한 편은 아니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 끼니마다 생각했다. 이 봉지만 다 먹이면, 냄새 안나는 더 좋은 사료로 바꾸고 말테야!
두 번째 사료는 C사 사료였다. 그맘때쯤 오랫동안 강아지를 키워온 지인이 말하길, 좋은 사료를 먹여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며 사료만큼은 좋은 것을 주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검색해 본 끝에 영양성분이 치우치지 않고, 보존제와 합성물질 없이 순수 생육과 가정식 재료만을 빚어 구웠다는 캐나다산 유기농 사료로 골랐다. 1kg에 4만 원 중반에 이르는, 꽤나 비싼 사료였다.
사료 봉지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봐도 고소한 과자 향기 비슷한 기분 좋은 냄새만 가득했다. 일석이조였다. 다만, 알갱이 크기가 아직은 호두에게 조금 큰지 잘 씹어먹지 못해 손으로 쪼개 주어야 했다. 그럼에도 요러모로 마음에 쏙 들어 가능하면 계속 C사 사료를 먹이고 싶었지만, 정착에 실패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이면 뭐 하나,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걸. 날이 갈수록 호두의 사료 섭취량이 줄어갔다. C사 사료가 입에 안 맞는 것 같았다.
강아지가 잘 먹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나에게 지인은 내버려 두라고, 굶다 보면 결국 다 먹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말이 쉽지, 내버려 두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고. 그때 호두는 채 1kg도 나가지 않는 아주 작은 강아지였고, 이렇게 먹이를 안 먹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호두 입에 맞는 다른 사료를 찾아야 했다.
그다음으로 구매한 사료는 B사의 연어와 흰 살 생선을 주재료로 한 프리미엄 사료였다. 가격대는 1kg에 3만 원 상당. 그맘때 호두는 눈물이 팡팡 터져 늘 꼬질꼬질한 얼굴을 하고 있어 눈물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B사 사료는 저알러지 포뮬러로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연어를 주재료로 한 사료는 닭고기나 소고기, 곡물 등이 함유된 사료에 비해 알레르기 유발 확률이 적다고 해서 속는 셈치고 한 번 구매해 보았다.
B사의 사료 알갱이 크기는 처음 호두가 먹던 R사보다는 크고, C사보다는 작았다. 그리고 수분 함유량이 높아 제형이 말랑말랑했다. C사 사료보다는 냄새가 좀 있었지만, R사 사료에 비하면 이 정도는 냄새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호두도 말랑한 새 사료가 제법 마음에 드는지 이전보다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하지만 호두는 B사 사료에도 정착하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잘 먹는 것 같았는데, 날이 갈수록 먹는 양이 시원찮아졌다. 거기에는 슬프고도 명확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 호두가 간식 맛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동생 부부가 집에 놀러 오며 북어 트릿 간식을 한 봉지 선물했다. 북어 원물을 동결건조한 것이었는데, 그 맛을 한 번 본 호두는 B사 사료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간식에 비해 사료의 향은 너무나 하잘것없었나 보다.
그 뒤로도 호두는 사료를 몇 번 더 바꿨다. 강아지 보호자들 사이에서 두루두루 호평이 난 N사 사료를 줘봤더니 아주 고개부터 팩 돌려버렸고, 동물성 단백질 원료를 강화하였다는 A사 사료를 주어봤더니 이 또한 처음에만 조금 먹다가 곧 흥미(?)를 잃어버렸다. 돌고 돌아 지금은 결국 처음의 R사 사료로 다시 돌아왔다. 기를 쓰고 안 먹겠다는데 버틸 재간이 있나.
그렇다고 호두가 다시 아기 때의 폭발적인 먹성을 그대로 되찾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깨작거린다. 아마도 호두가 이제 성견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 10개월이 넘어가면 퍼피 사료에서 어덜트, 다시 말해 성견 사료로 넘어가야 한다. 보통 퍼피 사료는 어덜트 사료에 비해 지방 함량이 훨씬 높다. 성장기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급여하기 위해서이다. 기름지면 당연히 더 맛있겠지. 내 코에 느껴지는 냄새는 어덜트 사료라고 해도 여전히 그 위용이 대단하기만 한데, 호두에게는 옛날 그 맛이 아닌가 보다.
오늘도 깨작깨작, 사료 투정을 부리는 호두를 향해 분통을 터뜨린다.
밥 안 먹으면 채소도 간식도 없어, 이 똥강아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