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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알고리즘에 멍멍이가 묻었나 봐

유튜브고 포털이고 왜 자꾸 강아지가 뜨는 거지?

by 정벼리

밤마다 조금만 더 놀고 싶어서 잠들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고민일까. 직장인이라면 다 그렇지 않나. 어느 기사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오늘 하루가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이 유난히 잠을 미뤄가며 조금이라도 더 놀아보겠다고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게 된다고 하던데. 어쨌든 한밤 중 휴대전화를 들고 있자면, 가장 먼저 유튜브 쇼츠나 유머 짤방에 손이 가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스와이프하며 타임킬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도 내 피드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뜨지 않던 콘텐츠들이 자꾸 화면을 차지한다. 강아지가 장난감을 물고 도는 영상, 꼬리를 흔들며 빙글빙글 도는 영상, 보호자에게 ‘눈빛 공격’을 날리는 영상... 유튜브든 인스타그램이든 포털 메인화면이든, 자꾸만 나에게 멍멍이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마치 추천 알고리즘 속에 진짜로 멍멍이가 한 마리 들어앉은 것처럼.


이유는 명확하다. 호두를 키우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키워보는 일이 처음이니 뭐든 서툴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처음엔 사료를 고르는 것부터 막막했다. 그레인프리, 하이포알러제닉, 싱글프로틴 같은 낯선 단어들이 쏟아졌다. 목욕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귀와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되, 온몸의 털에 고루 비누거품을 내서 씻긴다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었다.


강아지 키우기에 관한 모든 지식은 유튜브와 강아지 카페에서 배웠다. 강아지 용품 추천, 분리불안 예방법, 기초 훈련법, 반려견과의 소통법까지. 내 최근 검색 기록은 거의 '호두 일상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추천 알고리즘이 나를 완벽히 강아지 보호자로 인식해 버린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켜면 귀엽고 웃긴 강아지들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투덜거리듯 낑낑대는 말티즈, 집에 돌아온 보호자를 향해 육중한 몸을 던지는 리트리버, 그리고 야단을 맞으며 눈을 흘기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 푸들,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부 뺏기고 망연자실한 아기 시고르자브... 예전 같으면 그냥 스쳐 넘겼을 영상들인데, 이젠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다. 하염없이 바라보며 혼자 키득거리곤 한다. 때로는 감동적인 영상 앞에서 눈가가 촉촉해질 때도 있다. 떠돌이 강아지를 입양한 이야기, 나이 든 반려견이 마지막 산책을 하는 장면 같은 것들.


시선을 잡아끄는 강아지들의 모습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강아지들이 마치 사람처럼 ‘표정’을 짓는다는 점이다. 눈을 반쯤 치켜뜨고 삐진 듯 바라보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죄지은 얼굴을 하는 장면들. 어쩜 이렇게 사람 같을까 싶을 때가 많다. 알고 보니 그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강아지의 얼굴 근육에는 인간과의 긴 공존 속에서 생겨난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아지는 눈 주변 근육, 특히 내측안구거근이 다른 동물보다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이 근육 덕분에 강아지는 눈썹 안쪽을 들어 올려 흰자위를 더 많이 노출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눈이 더 크고 둥글게 보여서 아기의 눈처럼 순진한 인상을 준다. 강아지의 이런 표정은 인간의 양육 본능을 자극한다. 눈놀림(?)만으로도 귀엽다거나 지켜줘야겠다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눈빛은 아주 효율적인 소통 수단이다. 강아지가 눈을 크게 뜨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인간은 그것을 결핍이나 도움 요청으로 해석한다. 덕분에 강아지는 먹이를 얻거나, 혼날 일을 피할 수 있다. 사람과의 교류는 사실 수만 년간 진화해 온 생존 기술일지도 모른다. 아주 먼 옛날부터 표정을 잘 짓는 개체들이 인간의 호감을 얻고, 보호받고, 번식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겠지.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무의식적 선호가 강아지의 외형적 진화를 이끌어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더니 허브 화분이 처참하게 뜯겨 있었다. 어떤 생명체가 아주 야물딱지게 씹고 뜯고 맛본 것이 분명했다.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누구야? 이거 누가 그랬어?”


한껏 낮게 깔리는 내 목소리에, 꼬리를 흔들고 놀던 호두는 갑자기 소파 앞에 납작 엎드렸다.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척 딴청을 부렸지만, 네놈의 꼬리는 거짓말을 못하지. 바닥에 딱 달라붙은 꼬리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정말 반성하는 거 맞아? 또 그럴래, 안 그럴래!


“호두, 네가 그랬지! 누가 화분을 이렇게 뜯어놔!"


한 걸음 더 다가서자, 호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흰자위를 드러내며 먼산을 바라봤다. 귀도 축 늘어뜨리며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의 대치 끝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래, 네 내측안구거근은 참 훌륭하게도 진화했구나. 어휴, 귀여우니까 딱 한 번만 봐준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알고리즘 속 멍멍이와, 거실 속 멍멍이에게 이끌려 산다. 귀여움이란 건, 정말로 인간의 의지를 무력하게 만든다. 알고리즘도 그걸 아는건지, 내 피드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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