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강아지 털 깎기, 할만한데?
호두는 필수 예방접종을 마치자마자 배냇미용을 받았다. 집에 온 지 두세 달쯤 되었을 때였는데, 벌써 진작에 바야바처럼 털이 길게 자라 있었다. 배냇미용 이후로도 같은 미용실을 꾸준히 방문했다. 위생 미용이나 발톱 깎기는 정기적으로 맡기고, 전신 미용도 두어 번 정도 시켰으니 꽤 단골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속 같은 미용실을 찾았던 것은 미용실 원장님 때문이다. 본래부터 강아지를 워낙 좋아하니 직업도 강아지 미용사가 된 것이겠지만, 원장님은 호두를 진심으로 반갑게 반겨준다. 갈 때마다 함박웃음을 짓고 달려 나와 천천히 호두에게 손을 내어주며 냄새를 맡게 해주고, 호두의 속도에 맞춰 놀라지 않게 녀석을 안아준다. 호두가 좋아하는 북어 트릿도 갈 때마다 내어주며 한껏 귀여워 해준다. 그럼 뭐 하나. 호두는 미용실을 극혐 한다.
집을 나설 때에는 평상시의 산책인 줄만 알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도도하게 걷던 호두. 그러나 미용실이 있는 상가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만 서면 돌변한다. 작은 몸을 땅에 납작 붙였다가, 제 풀에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려 후다닥 내빼고는 한다. 하네스 줄을 꽉 쥐고 호두를 붙잡으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아니야, 나는 여기 안 갈란다, 진짜로 나 여기 보낼 거냐, 이러지 말아라, 애원하듯이.
정기적으로 미용실에서 관리를 받는 건 강아지를 위한 일이라지만, 그래도 워낙에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강아지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면, 집에서 편안하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제로 끌려가서는 낯선 미용사 손에 맡겨져 몇 시간 동안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일 테니까. 미용을 끝내고 오면 집에서 축 늘어져 몇 시간이고 잠을 자는 호두를 보면, 귀여우면서도 마음이 영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강아지 미용이 선택의 영역만은 아니다. 호두는 말티즈와 푸들의 믹스견인 말티푸다. 푸들의 곱슬곱슬한 털과 말티즈의 직모가 딱 반반쯤 섞인 반곱슬 털을 가졌다. 이 반곱슬이 사실 관리하기 꽤 까다롭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의 이야기다. 나는 다른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기 때문에, 그냥 직관적인 느낌을 말할 뿐, 실제로는 직모나 곱슬모가 훨씬 관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호두의 반곱슬 털은 미용을 너무 짧게 시키면 밋밋하고 영 볼품이 없어진다. 또 미용을 한 지 한 달쯤 지나 털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빗질이 잘 안 된다. 슬리커라고 불리는 강아지 전용 브러시를 사용해야 죽은 털도 빠져나오고, 털에 볼륨감이 빵빵 솟는데 털이 길어지면 이게 빗질이 참 어렵다. 조금만 세게 빗으면 호두는 눈을 세모나게 뜨고 나를 째려본다. 그렇지만 빗질을 게을리하면 털이 엉키고 뭉치면서 금방 꼬질꼬질해지는 걸.
게다가 우리 호두는 '꼬질왕'이 될 운명을 여러모로 타고난 것 같다. 워낙에 눈물이 많은 편인 데다, 물을 마실 때면 꼭 주둥이 전체를 물그릇에 푹 담그고 먹는다. 물을 마시는 건지 물장난을 치는 건지 모를 정도다. 당연히 얼굴 주변은 늘 축축하고 거뭇해서 꼬질미가 흐른다. 다시 말해, 늘 일정 이상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청결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꾸 씻고, 관리해야 한다.
목욕은 되도록 집에서 시켜왔지만, 털 깎기는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두가 미용실에서 발발 떠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어쩌면 혹시, 집에서 내가 직접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부분 미용부터 시작해 보았다. 호두가 가장 지저분해지기 쉬운 얼굴 주변의 털을 정리할 목적으로 미용 가위를 구입했다. 얼굴 주변의 너저분해진 털 몇 가닥을 조심스럽게 잘라봤다.
뭐야, 생각보다 할 만한데?
간식을 주어가며 시켰더니, ‘기다려’ 지시에 따라 놀라울 만큼 얌전히 앉아있어 주었다. 어쩌면 영리한 털뭉치 녀석이 가위가 얼굴 근처에 오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일 수도 있다. 호두는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얌전히 나를 믿어 주었다.
부분 미용이 성공하자 금방 자신감이 붙었다. 이번에는 전신 미용에 도전해 보았다. 곧장 강아지 전용 클리퍼를 구매했다. 클리퍼 사용법을 유튜브로 몇 번 시청한 후, 적당한 털 길이를 유지할 수 있는 클립빗을 끼워주고 몸통을 쭉쭉 밀어주었다. 왜앵, 털이 깎여나가는 소리를 따라 호두의 털이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호두는 여전히 간식과 '기다려' 지시 속에서 잘 버텨주었다.
이것도 생각보다 쉽네? 하다 보니 꽤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원래 손으로 사부작거리며 뭔가를 만들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강아지 미용도 일종의 DIY 놀이(?)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즐겁게 호두의 전속 미용사로 활약 중이다. 얼굴 모양을 동그랗게, 귀 주변을 길렀다가 잘랐다가 이리저리 디자인하며 자르는 일이 퍽 즐겁다. 몸통과 다리의 털 길이를 다르게 해 가며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다. 하다 보니 점점 클리퍼 다루는 요령도 손에 익어, 요즘은 발바닥 패드 사이 털도 처음보다 꽤나 깔끔하고 짧게 밀어줄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미용을 하면 비용도 아끼고, 호두의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미용을 마친 후 호두를 칭찬할 때 느끼는 뿌듯함은 덤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전속 미용사라고 한들, 아주 능숙한 미용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호두와 매번 치열하게 대치하는 항목이 하나 남았다. 바로 발톱 깎기다.
호두는 발톱깎기만 꺼내오면 온몸으로 발버둥을 치고, 협조라고는 눈곱만큼도 해주지 않는다. 간식을 바치고, 꽉 끌어안아 보아도 소용이 없다. 하긴, 나 또한 혹시나 발톱의 혈관이 있는 곳을 건드릴까 두려워 바들바들 떠느라 시간을 끌다가 호두의 반항만 키우곤 한다. 평균적으로 세 번 중 두 번은 장시간 대치 끝에 내가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미용실이나 동물 병원에 발톱만 깎으러 간다.
여전히 호두는 미용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발 떨면서도, 내게는 절대 발톱을 깎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집에서 내 손에 발톱이 잘리는 것보다, 미용실에 가서 잠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더 편한 걸까? 어휴, 이 똥강아지의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