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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데려오는 101가지 방법

나는 비록 펫숍에서 호두를 데려왔지만.

by 정벼리

나는 호두를 펫숍에서 '사왔다'. 지금껏 내내 미소 띤 얼굴로 호두의 이야기를 읽어와 준 독자님이라 할지라도, 이 한 문장에서 눈살을 찌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강아지를 사랑하고, 올바름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사고파는 애견샵 시스템, 소위 번식 공장으로 대변되는 기형적인 산업 구조를 끊임없이 비판해 왔다. 나 역시 그 목소리에 담긴 선의와 신념에 대해 몰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호두를 만나기 전, 가급적 더 가치롭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강아지를 데려오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초보 보호자로서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두를 만나기 전까지,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한참 찾아보고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현실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쉽게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희망했던 방법은 가정분양이었다. 새끼 강아지를 낳은 어미견이 있는 믿을 만한 가정을 찾을 수만 있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아기 강아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부모견은 어떤 건강 이슈가 있는지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역 맘카페나 관련 커뮤니티를 아무리 수소문해도 가정분양이 가능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요즘은 중성화 수술이 많이 보편화되어서, 가정분양이 예전만큼 흔하지도 않다고 하더라.


다음으로 알아본 것은 유기견 입양이었다. 기왕이면 갈 곳 없어진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 하지만 여기에는 나의 강아지 공포증이라는 엄청난 장벽이 있었다. 성견을 데려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미안하지만 무서워서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이의 간곡한 부탁에 강아지를 키우자고 결심한 뒤에도 단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 있었다. 그것이 '아기 강아지'였다. 나를 물거나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위한 최소한의 심리적 방어막이라고 할까. 요만큼도 과장을 보태지 않고, 나는 우리 가족이 사는 동네로부터 반경 50km 내에 있는 모든 지자체의 유기견 보호소를 뒤져보았다. 하지만 아기 강아지는 단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임시보호 중인 강아지들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에서 임보 강아지 입양을 주선하는 피드들을 찾아보았다. 대개 입양 후 몇 년간 정기적인 방문에 동의해야 하고, 안정적 적응을 위해 상주하는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등 입양조건과 약속해야 할 사항들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임시보호자의 노력으로 건강하고 예쁘게 관리된 모습에 서로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넘쳐 경쟁도 치열했다. 감히 우리 가족이 낄 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인터넷을 기웃기웃 대던 중에 옆 도시에 구조된 강아지들을 보호하며 입양처를 주선하는 센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라도 새끼 강아지가 있을까 싶어 방문 약속까지 잡았다. 전화로 약속을 잡으며 물어보니, 마침 브리더에게서 구조해 온 새끼 강아지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방문 직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곳이 사실은 보호소를 가장한 신종 애견샵에 불과하며, 실제 구조된 강아지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소정의 입양금과 후원금을 내야 한다고 하더라니. 사람들의 선의와 윤리 의식을 상술에 이용하다니, 정말이지 너무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조용히 방문 약속을 취소했다.


이쯤에 이르자 나는 다른 입양처를 알아볼 기운이 더는 남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애견샵을 택했다. 다만 아무 곳이나 가지 않으려는 노력은 기울였다. 평판이 좋고, 가게 내부와 강아지들이 깨끗하게 잘 관리되는 곳을 찾아 세 군데 정도를 후보로 두었다. 그중 첫 방문한 곳에서 운명처럼 호두를 만나, 더 이상 다른 곳은 볼 필요도 없이 덥석 데려오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지만 말이다.


멍멍이도 사람도 모두 행복한 입양을 위해, 다양한 정보제공이 필요해


호두를 데려와서 강아지 세상을 더 많이 배우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강아지를 찾던 시기에 공교롭게 아기 강아지가 없었을 뿐, 유기견 센터에서도 아기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다. 평상시에 드물게 들어오기도 하지만, 따뜻한 봄이 되면 번식장 등 분양처에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혹은 기타 여러 사정으로 새끼 강아지들이 유기견 보호소에 버려지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땐, '아, 몇 달만 더 기다려볼 걸 그랬나' 싶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가 좀 더 인내심을 가졌더라면, 호두와 비슷한 아기 강아지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 집의 호두는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는걸. 후회는 짧고, 호두와의 동행은 길다.




내가 호두를 펫숍에서 데려온 직후, 주변의 한 지인은 조용히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누가 어디서 데려왔냐고 물어보면 가정분양 받았다고 해라. 요즘은 강아지 사 왔다고 하면 개념 없는 사람 취급받는다.”


그 말을 듣고 퍽 씁쓸했다. 강아지 산업이 기형적이고, 그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동물 학대가 일어나고,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복잡한 현실 속에서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노력을 무시하고, 샵에서 반려동물을 데려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조건 생각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굳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우스워, 지금껏 호두를 '사왔음'을 굳이 감춰본 적은 없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호두가 우리 가족을 만난 이후부터 얼마나 행복한 견생을 살고 있는지 아니겠어. 지금 호두는 평화롭고, 매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전에 비하면 강아지와 반려동물의 세계에 보다 눈을 떴을 뿐, 나도 아직 애견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특히나 기형적 애견산업의 실체와 애견산업이 지향해야 할 점이라든지, 추천할만한 멋진 강아지 입양 방법에 대해서는 말이다. 호두와 함께하는 매일이 나에게는 강아지 보호자로서 맞는 첫 번째 순간들인걸. 누군가 나에게 그럼 강아지를 어디서 데려와야 할까요, 묻는다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유기견 보호소를 지속적으로 살펴보시면 어떨까요, 권하는 것 외에 뾰족한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구호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강아지를 어디서 데려오는 것이 좋을지,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는 진짜 '101가지 방법'을 보다 자세히, 그리고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강아지 보호자 지망생들을 위해 구체적이고 친절한 강아지 입양방법이 널리 알려진다면, 기형적인 강아지 산업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한 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정보와 길을 알려줄 사람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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