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1박 2일의 자유가 생겼다.
지난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일요일 정오까지 25시간 동안 혼자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약 3500일 만에 처음으로 아무런 일정 없이 꼬박 하루를 넘도록 나 홀로 집에 남겨진 시간을 얻은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남편과 내가 서로 상부상조해 가며 진작에 서로 긴 자유와 휴식을 주고받을 수는 있었다. 한 사람이 아이 케어를 전담하고, 다른 하나는 훌쩍 여행을 다녀오든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방안에 대해 우리 부부도 몇 번이나 함께 이야기해 봤었다. 하지만 번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연차를 쓰자니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가족여행도 가야지, 아이 방학 때 번갈아가며 쉬어야지, 갑자기 아이가 독감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등의 걱정으로 어쩐지 일 년에 며칠 없는 연차를 낭비하는 느낌이었다. 주말은 내가 손사래를 쳤다. 주중에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주말에 아이를 혼자 돌보고, 다음 월요일에 또 출근을 한다니. 차라리 자유 주말을 안 갖고 말지,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로부터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제는 태양계에 속하지도 못하는) 명왕성에서나 일어나는 남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몇 주 전, 남편이 아이가 잠들고 난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동창 애들 단톡방에서 주말에 각자 아내들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1박 2일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말이야."
"뭐? 어디로, 뭐 하러 가는 거야?"
"양평에 수영장 있는 펜션을 잡아서 애들 놀게 하고, 우리도 맥주 한잔씩 하면서 얘기나 하자는 거지. 그동안 다들 육아한다고 한동안 못 만났잖아."
"그렇지.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마지막으로 친구들이랑 여행 가본 게 10년도 더 전이네."
남편은 평소 정말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집-회사-집-회사가 당연한 루트이고, 어쩔 수 없는 회식자리 외에 저녁약속이라고는 일 년 가도록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번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속은 힘닿는 대로(?) 점심에 잡는다고 한다. 일 욕심 많은 아내와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키워내려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남편이 처음으로 친구들과 주말에 여행을 가는데, 여행 준비물이 자녀라니 허락해 줘야지 어쩔 도리가 있나.
아마도 아이 동반은 각자 아내들에게 수월하게 여행 허락을 받기 위한 선제적 제시 조건이었지 싶다. 나만 해도 생각보다 선선하게 다녀오란 대답이 부드럽고도 따듯한 음성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기똥차다. 그 친구랑은 평생 친하게 지내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도 엄마 없이 아빠와 떠나는 여행에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처음에는 좀 망설이는 것 같더라. 다른 삼촌들이나 친구들과 만나는게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싶어 몇 번이나 의사를 물어봤더니 솔직한 마음이 나왔다.
"나는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엄마는 혼자 집에 있어도 괜찮아?"
"응? 엄마 걱정한거야? 엄마는 괜찮아."
"그래도 주말에 혼자만 집에 남아있으면 좀 슬프지 않겠어?"
"아니야. 엄마는 씩씩하게 혼자 책 읽으면서 별이 기다리고 있을게. 별이 보고싶으면 전화하면 되지."
이럴 때 보면 아이는 그래도 아직 아이다. 마음 속으로는, 얘가 뭐라는 거야, 나는 혼자면 훨씬 편하지,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될 일이다. 토닥토닥 달래서 함께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여벌옷과 수영복, 보드게임, 간식 따위를 잔뜩 넣어주었다. 떠나는 순간까지 아이는 나의 진심을 모른 채 손을 흔들며, 혹시 무섭거나 나 보고싶으면 전화해,라고 말했다. 웃긴 녀석.
그렇게 나는 지난 주말, 집에 혼자 남았다. 혼자 남은 시간이 어땠냐면... 정말 황홀할 만큼 평화로운 휴식의 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