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없이, 그냥 쉬는 시간은 참으로 충만했다.
* 이 글은 앞 이야기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남편과 아이만 여행을 떠난 뒤 / 처음으로 1박 2일의 자유가 생겼다.
막상 혼자만의 주말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뭘 해야 나중에 돌이켜봐도 이 시간을 잘 보냈다고 만족스러울지 한동안 고민을 했다. 나도 혼자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해 봤지만, 강아지를 혼자 집에 둘 생각을 하니 좀 꺼려졌다. 게다가 당일치기라도 어딘가 다녀오려면 남편이 자동차를 가져가버렸으니 꼼짝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요즈음 바깥날씨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집에 콕 틀어박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그저 푹 쉬기로 마음을 정했다.
허무할 정도로 그냥 쉬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 순간 내키는 일을 했다. 몇 달 전 여행 갈 때 비행기에서 휴대전화로 보다가 도중에 멈춘 유치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커다란 거실 티브이로 틀었다. 두어 편 보고 나서는 일시정지를 시켜두고 세탁기를 돌렸다. 흰 빨래, 검은 빨래, 이불 빨래를 하루 종일 순서대로 돌리며, 세탁을 마친 빨랫감을 건조기로 옮기길 반복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정주행이 끝날 때까지 티브이를 보며 건조기에서 막 나온 보송보송한 빨래를 천천히 갰다.
점심에는 오이를 잔뜩 채 썰어 올려 아주 매운 비빔면을 만들어 먹고, 저녁에는 또 오이를 잔뜩 올린 콩국수를 해 먹었다. 비빔면은 아이가 못 먹어서, 콩국수는 남편이 안 좋아해서 평상시 쉽게 먹기 어렵지만 나는 무척 좋아하는 것들이다. 식간에 입이 심심하면 내 입맛에 딱 맞는 라테를 공들여 만들어 먹었다.
한껏 내 취향의 음악을 틀어놓고 지는 석양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아지가 왈왈 짖어대길래 황태 간식을 가져와 내주며, '돌아'를 가르쳤다. 몇 번 반복하니 아주 잘했다. 평소엔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간식만 쥐고 있으면 찰떡같이 말을 듣는 모습이 얄미워 털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요놈, 하고 괴롭혀보기도 했다. 강아지는 그저 신나서 꼬리만 휙휙 돌려댔다.
막연하게 생각했을 땐 밤늦게까지 놀 것 같았는데, 아무런 일정이 없으니 어느 순간 나른해졌다. 생각보다는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다.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환기를 했다. 그리고 느릿느릿 아침밥을 챙겨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동안은 주말 요가는 도통 나갈 수 없었는데 이때가 기회다 싶어 일요일 오전 요가수업 신청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양산을 챙기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으니 강아지가 뽀르르 뛰어나와 어딜 가냐며 낑낑거렸다.
“호두야, 기다려. 아빠랑 언니가 금방 올 거야.”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과 아이가 돌아와 있을 예정이었다. 푹 쉬고 잘 먹고, 마지막은 운동으로 끝내는 휴가가 썩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3500일 만에 맞는 혼자만의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근사했다. 완벽한 ‘멈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니, 지난 금요일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이렇게 좋은 휴식이 나를 기다리는 줄 알았다면 그동안 휴가를 아까워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남편 친구들이 이런 여행 가끔 한 번씩 우르르 떠나 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