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1)
이전 글에서 지나가는 말로 몇 번 언급되었지만, 우리 가족은 서울 근교의 오래된 소도시 구축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전에는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에 살다가 직장 문제로 이곳으로 이사온지 이제 3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가족 중 누구도 우리가 이 도시에서 영원히 정착하여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도시가 별로라는 의미는 아니다. 근무지가 바뀌면 또 떠나야 할 것임을 예상하는 것이다. 결혼 후 지금껏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도 언제든 내 근무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근무지 문제는 앞으로도 이 회사에 다니는 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다소간 불편을 감수하고 어딘가 정착할 동네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우리 부부는 이곳이 우리가 정착할 바로 그 동네라는 느낌을 받는 장소를 아직 찾지 못했다. 변동 폭이 큰 근무지를 고려하면 우선 교통이 좋아야 하고, 아이가 있으니 교육환경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너무 복잡한 도심은 싫고, 주변에 공원이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우리 부부의 경제적 능력으로 집 값을 부담할 수 있어야 하니 쉬운 선택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정착과 내 집 마련이라는 화두를 늘 염두하면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집을 구하고 50대 이후에나 정착할 동네를 정해 집을 구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다음 이사 갈 동네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때 즈음 내가 근무하는 지역과 가장 가까운 학군지의 아파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 (여기서 학군지는 꼭 서울 내 유명 학군지만을 칭한 것은 아니고, 일정 지역 내 학원이 밀집해 있는 교육중심지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영재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아이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니, 어느 정도의 사교육을 포함한 공부 뒷바라지는 자연스럽게 밟을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일종의 취미생활처럼, 종종 다음에 우리가 거주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동네들에 대해 토론하고는 한다. A 동네는 우리처럼 각자 삶이 바쁜 맞벌이 부부가 아이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동네는 아닌 것 같아. B는 어때? 거긴 아파트들이 전부 지금 우리 집보다도 한참 더 구축이던데, 지금도 불편한 점이 많은데 괜찮을까. C나 D도 있어. 거긴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당신이나 나나 출퇴근이 어려울 거야. 그럼 중심 학군지는 아니더라도 E도 고려해 볼 만 해. 그렇네, 여긴 신축 아파트도 있구나. 어머나, 근데 신축이라 그런지 전세가 너무 비싸! 대출을 받으면 이 정도까지는 가능할 거야. 그래도 이자가 부담스러운데, F는 어떨까... 그렇게 예상 후보지를 그려가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강아지랑 놀다가 불쑥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는 말이야. 마당에서 호두랑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그런 집에 살아보는 게 소원이야. 강아지는 수명이 인간보다 훨씬 짧은데, 내가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소원씩이나?"
"응. 평생의 소원이야. 마당에서 호두랑 같이 자유롭게 놀고 싶어. 그렇게 살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평생(?)의 소원씩이나 된다는 아이의 말에 양가적인 감정이 찾아들었다. 아이고, 대단한 평생이시군요, 싶어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네 소원은 아무래도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는 말을 차마 표현할 수 없어 짠하기도 했다. 강아지 수명은 평균 15년 정도 된다는데, 앞으로 15년 내에 우리가 마당 있는 집에 거주하는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지금껏 내 머릿속에 염두한 향후 거주지의 후보군 중 지역을 막론하고 마당이 있는 집은 고려된 적이 없는데. 그리고 보통 학군지들은 아파트촌이던데!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