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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화내는 엄마

네 마음속 엄마 얼굴은 활짝 웃고 있고 싶은데.

by 정벼리

저녁에 요가원에 다녀올 채비를 마쳤는데 아이가 갑자기 운동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진짜로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것은 아니다. 만 10세 넘은 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으려면 한참 허리를 굽혀야 할 테니 말이다.


평소에 늘 이 시간이면 요가원에 가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갑자기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에 가지 말라고 떼를 쓰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별이야, 엄마 지금 나가야 해. 수업취소하기엔 이미 늦었어. 왜 그래?"
"그냥 엄마랑 놀고 싶어."
"그럼 다녀와서 놀든지, 내일 놀면 되지."
"다녀오면 너무 늦고, 내일은 내일이잖아."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 방학 중에 학원도 새로 다니게 되었고 이래저래 낯선 스케줄에 마음이 헛헛했나 싶다. 하지만 그땐 내 맘이 급해서 그게 보이지 않았다. 바로 집을 나서지 않으면 꼼짝없이 수업에 늦을 판이었다. 단호하게 아이를 윽박질렀다.


"네가 생각해도 지금 말이 안 되는 소리 하는 거 알지? 엄마는 지금 운동하러 갈 거니까 책 보고 있든지 놀고 있어. 갑자기 왜 이래, 정말!"


아이는 입이 뾰족 나와서 엄마 붙잡기를 단념했다. 아이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자꾸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엄하게 떼놓고 나왔으면서, 내가 너무 무정했나 싶어 마음은 자꾸 발걸음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내 마음은 아이 방문 앞을 서성이며 들숨에 후회, 날숨에 다짐을 반복했다.


그렇지만 집에 돌아간 뒤로 그 후회와 다짐을 실천할 기회를 놓치고, 나는 또 아이를 달달 볶았다. 지금이 몇 시인데 씻지도 않은 건지, 내일 오전에 학원 갈 준비는 다 해놓은 건지, 책을 읽고 나면 제자리에 꽂아놔야지 왜 이렇게 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았는지 참견할 거리가 한 바가지였다. 잔소리와 훈계를 한바탕 쏟으며 보챈 뒤에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아이와 마주 섰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잘 자고 내일은 제발 자기 일은 스스로 챙겨, 라고 마지막까지 잔소리를 했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자러 들어가기 전에 아이 방에 들렀다. 잠든 아이 얼굴을 만져보니 땀이 살짝 묻어났다. 선풍기를 켜고 타이머를 맞춰 두었다. 곤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운동하며 느꼈던 후회와 다짐이 뒤늦게 생각이 났다. 아, 오늘도 '주로 화내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나는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한지, 왜 이렇게 작은 일에 화를 잘 내는지, 따뜻하게 품고 안아주는 일에는 왜 그렇게 인색하기만 한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유치원에서 준비물로 엄마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을 가져오라고 한 날이 있었다. 내 얼굴만 크게 나온 사진을 어디 찍을 일이 있나. 순전히 아이 준비물을 위해서 백 년 만에 셀카를 여러 장 찍었었다. 잘 나온 사진 서너 장을 두고 아이에게 한 장만 골라달라고 했다. 아이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한 장을 바로 짚어냈다. 왜 이걸로 골랐냐는 질문에 아이는 엄마가 가장 환하게 웃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아이가 별다른 말을 덧붙인 것은 없지만, 그냥 뉘앙스와 분위기에서 내가 주로 아이에게 보여주는 표정이 웃는 얼굴은 아니었구나,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 아이와 마주할 땐 주로 많이 웃어주고, 안아주고, 잔소리보다는 긍정의 말을 더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엄마를 떠올렸을 때 아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이 활짝 웃는 내 얼굴이었으면 싶어서. 그게 뭐라고, 그 후로 몇 년이 지나도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잠든 아이 머리칼을 한참 동안 쓸고 또 쓸었다.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데, 귀하디 귀한데. 너를 위해서라면 간과 쓸개는 물론이거니와 오장육부를 다 내주어도 아까울 것이 하나 없는데. 오늘도 주로 화내는 엄마여서 미안해. 내일은 주로 웃는 엄마가 되도록 더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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