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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0. 2021

보이지 않는 상처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사진액자를 조립하던 중 금속으로 된 프레임에 오른쪽 손목 아래를 1센티가량 베었다.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나사를 주워 올리려는 찰나에 일어난 사고였다. 처음엔 살갗만 스친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작업을 이어갔는데, 몇 초 후 새빨간 액체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급히 상처 난 곳을 지혈하고 십분 정도 지나자 피가 멈췄다. 소독 후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까지 붙이니 그제야 상처 부위도 놀란 마음도 진정되는 듯 했다. 


다음날 반창고를 떼어 낸 후 자세히 보니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아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았다. 평소 조심성이 부족한 터라 다칠 때마다 안전불감증이 있는 것이 아니는 주변의 타박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생긴 흉터들이 셀 수 없이 많음에도 여전히 넘어지고 다치는 게 다반사다. 관리도 잘 못하는 데 여행까지 앞두고 있으니 걱정이 앞섰다. 


춘천에 도착한 후 역시 우려했던 대로였다. 소독은 커녕 반창고를 며칠씩 붙이고 다녔다. 샤워하고 새로 붙인다는 것을 옷 입는 사이 까먹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처는 일주일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나의 둔감함도 문제였지만, 굳이 핑계를 대자면 상처 부위도 문제였다. 이번에 다친 곳이 손목 아래 바깥쪽이어서 의식해서 보지 않으면 평소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팔목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선이 닿지 않아 돌보지 못한 상처처럼 마음이 닿지 않아 돌보지 못한 상처도 있을 것이고, 그 깊이가 가늠이 안되 두려움에 보지 못한 상처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단칸방에 살았던 기억이나 미술을 포기하고 상업계 고등학교로의 진학했던 기억처럼. 저녁이면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내 안 곳곳에는 미처 흉터로 아물지 못한 크고 작은 희미한 상처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도 애써 돌 볼 줄 알아야 싶다. 그래야 덧나지 않고 잘 아문 흉터가 될 테니 말이다.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보이지 않는 상처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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