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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0. 2021

친구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춘천에서 한달을 지낸다고 했을 때 몇 몇 사람들이 놀러 오겠다고 했다. 그 중에는 비어있는 인사말도 있었을 것이고, 춘천도 볼겸 닭갈비도 먹을겸 겸사 겸사 오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 온 지 열흘쯤 되어갈 무렵 업무차 양평 부근에 왔다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이 컸지만, 갑자기 온 연락에 일정 맞추기가 힘들어 만남은 불발됐다. 


그러곤 며칠 후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주 시간 어때? 하루 연차 쓰고 가려고 하는데…”


이 친구와 알게 된지는 십 년이 채 안 된다.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그는 모임 내에서 4차원 괴짜로 통했다. 몇 번의 식사자리를 가지며 나눈 대화를 통해 생활패턴이나 관심사 등 도통 통하는 부분이 없다는 걸 알았다. 엉뚱한 발상을 기반으로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가 버거웠던 적도 있었지만, 그와의 대화가 싫지 만은 않았다. 사람으로 인해 몇 번의 상처를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에 대해 악의가 없고 순수한 마음으로 먼저 다가서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통된 대화의 소재도 있었다. 영화나 음악같은 경우 좋아하는 작품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이견이 생길 때는 열띤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종종 그에게 내 글과 사진을 보여주며 가감없는 의견을 구했고 그 역시 그가 그리는 웹툰에 대한 신랄한 평을 요청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퍼지기 전까지는 봉사활동이나 사적모임을 통해 한달에 한 번 이상씩은 만났다. 그러다 보니 일년에 한 번 볼까 하는 이십년지기 친구들보다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서로의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가족간에도 돈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라는 나름의 신념을 깨고 유일하게 금전거래를 할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그조차 동료의 결혼식에서 잠깐 나눈 인사가 전부였다. 이번 여행에서 춘천까지 나를 보러 올 친구가 그라는 것을 바랐고 의심치 않았다. 몇 년 째 초보운전인 그는 기차를 타겠다고 했다. 식사 한끼 하자고 서울에서 용산까지 그리고 다시 용산에서 춘천까지 2시간 30분, 왕복 5시간의 거리를 오겠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춘천에 와서 먹는 한끼인데 당연히 닭갈비는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다고 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


생각해보니 그만한 것이 없었다. 사실 통닭에 맥주면 어떻고 파전에 막걸리면 어떠랴.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힐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가 좋은 사람이면 된 것이다. 그렇게 만난 우린 묵혀둔 이야기들을 안주삼아 짧고도 긴 저녁을 먹었다. 






저는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칩니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꼭 붙들고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그런 친구 있나요? 저는 몇 명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함께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데.


- 한창훈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중에서 -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친구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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