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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0. 2021

맛집의 옆집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맛집의 옆집


여행이든 출장이든 춘천에 온 횟수를 헤아리기엔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하지만 늘 체류기간은 짧았던 터라 주로 포털사이트가 알려주는 명소나 맛집 위주로 동선을 잡았었다. 해마다 새로 생겨나는 맛집들을 다 갈 순 없었지만 그래도 올 때마다 꼭 챙겨서 들르던 곳은 닭갈비집이다.


나의 닭갈비 역사를 살펴보자면 그 시작은 스무살 신포시장(인천 재래시장)에서 처음 접했던 철판닭갈비였다. 사실 지금은 돼지갈비 소갈비를 더 좋아하지만, 당시 처음 맛보았던 닭갈비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맛도 맛이었지만 커다란 원형 철판에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려진 닭고기와 온갖 채소를 한데 넣고 볶아 먹는 방식이 신선했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철판을 응시하며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가 먼저 익기를 바랐다. 배가 고플 땐 붉은 양념장 때문에 익은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워 설익은 채 먹은 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격렬했던 전장처럼 순식간 황폐해진 철판 위를 보며 아쉬워하긴 일렀다. 우리에겐 아직 볶음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장님 여기 밥 볶아주세요!”


주문과 동시 멀리 그릇에 밥을 담는 주방아주머니에게 시선이 모인다. 밥 위에 참기름 한바퀴 휘 두른 후 잘게 다진 채소와 김치를 올린다. 그리고 김가루를 솔솔솔 뿌린 후 무심한 듯 깨소금까지 몇 번 털어 넣으면 준비 끝!  철판 위에 기름을 두르고 그릇 속 재료를 부은 후 사방으로 흩어진 양념을 긁어 모아 섞는다. 잘 비벼진 밥은 빈대떡 마냥 납작하게 펼친 후 불을 약하게 조절한다. 이제부턴 선택과 기다림이다. 볶음밥처럼 즐기고 싶은 사람은 기다림없이 중앙부터 먹으면 되고 누룽지처럼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잠시 기다렸다가 가장자리 부위부터 공략하면 된다. 

춘천에 오기 전까지 나에겐 닭갈비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여럿이 함께 먹어야 더 맛있는 음식이었다. 


서른살이 되던 해, 춘천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온 적이 있다.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사주겠다며맛집이라고 데리고 갔다. 도심에 있는 닭갈비골목이었는데 간판마다 ‘원조’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근데 의아했던 것은 원조 뒤에 ‘숯불’이란 단어였다. ‘닭갈비를 숯불에 구워먹는다고?’ 내 사전에서 ‘숯불’과 ‘닭갈비’는 의외의 조합이었다. 

보통맛, 매운맛, 메뉴도 단출했다. 잠시 후 테이블 중앙에 달궈진 숯이 놓였고, 주문한 닭갈비가 불판 위에 올려졌다. 그간 먹었던 닭갈비와는 방식도 맛도 달랐다. 돼지갈비처럼 갈비대에 붙은 살을 넓게 편 채 양념에 재운 후 구워서 잘라먹는 방식으로 강한 양념 맛보다는 훈연의 향과 감칠맛을 좀더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집을 갈까 고민을 하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닭갈비 골목으로 향했다. 5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한 가게 앞에 길게 줄이 서있었다. 여러 차례 매스컴에 보도된 ‘맛집’이었다. 음식 앞 기다림에는 인색한 편인 나는 옆집으로 향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거니와 강단 있는 문구가 발길을 끌었다. 


‘방송출연은 절대하지 않는 진정한 맛집,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집’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은 작은 평수의 가게였다. 대기줄은 없었으나 이미 만석으로 운 좋게 마지막 빈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한 분이 혼자 운영하셨는데 별도의 주문없이 인원수대로 알아서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었다.

‘아 친절은 바라지 말아야겠다. 맛만 있으면 되지’

그간 다녀봤던 닭갈비집과는 밑반찬부터 달랐다. 손수 담근 김치와 깻잎장아찌 그리고 무청 시래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 나왔다. 고기가 다 익기도 전 소주 한 병이 비워졌다. 무뚝뚝한 사장님은 혹여라도 고기가 탈까 수시로 와서 뒤집어주며 맛있게 먹는 조합도 일러주셨다. 덕분에 노릇이 잘 익은 닭갈비에 소주 3병을 비우고 가게를 나섰다.


난 미식가도 닭갈비 마니아도 아니다. 맛차이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 먹은 닭갈비도 스무살에 먹었던 것처럼, 서른살에 먹었던 것처럼 맛있었다.


우리가 아는 맛집이 꼭 맛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럴 땐 맛집의 옆집을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맛집의 옆집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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