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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2. 2021

간이역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간이역


며칠 전 의암호 자전거 둘레길을 드디어 완주했다. 오르막 내리막 굽이굽이 넘어가는 길처럼 날씨도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옷이며 모자며 입고 벗기를 반복하느냐 예상시간을 훌쩍 넘겼다. 종착지에 다다를 즈음엔 더 이상 발은 내 자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이미 페달이 하나가 된 듯 했다. 자전거에서 내릴 땐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조금은 단단해진 허벅지를 보며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름의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당분간 자전거는 안타도 되겠다 싶었다. 걷기 좋은 코스를 찾아보았다. 춘천에는 가볍게 걷기 좋은 길로 ‘봄내길코스’라는 7개의 산책코스가 조성돼 있다. 옛 마을길을 따라 걷는 ‘실레이야기길’이나 ‘물깨말구구리길’도 있고, 수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의암호나들이길’이나 ‘소양강변길’ 등 테마가 있어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걷기로 한 길은 ‘북한강 물새길’로 불리는 봄내길 7코스로 지금은 폐역이 된 옛 강촌역에서 시작해 옛 백양리역과 신 백양리역까지 이어지는 길로 1시간 정도의 거리다. 옛 경춘선하면 흔히 대성리역 강촌역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백양리역이라는 간이역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강촌역에 도착하니 초입에 아치형의 긴 터널이 있었다. 벽면에 새겨진 그래피티를 구경하고 그 앞에서 사진도 몇 컷 찍다 보니 금세 터널 끝에 이르렀다. 철로를 모두 걷어 걷기 좋게 흙길을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강과 삼악산의 풍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2키로 정도 지나자 철로와 이어지는 노란 건물 하나가 보였다. 강촌역과 경강역 사이의 간이역이었던 백양리역. 역사에 설치된 푯말을 보니 ‘봄철 강변에 버들 꽃이 피면 들판이 온통 하얗다’고 해서 백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2010년 역사를 이전하며 폐역이 되었고, 2015년 복원되어 현재는 춘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장소 중 한 곳이 되었다.


사라지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 혹은 외면 받은 것들은 그 기능을 잃고 사라진 후에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멈춰버린 백양리 역사 안, 배달되지 우체통, 걸리지 않는 공중전화기 앞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리움’이었다. 


더는 만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머지않아 새로운 그리움이 될 지금. 그 모든 것을 묻고 나서야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외로워서 떠났다> 간이역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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