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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3. 2021

가장 맛있는 안주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평소와 달리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보통 때였으면 침대에서 이불과 한참 씨름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마음이 급했다. 하루 세워 둔 글의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선 바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눈꼽도 떼지 않은 채 쓴 글 한 편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니 11시다. 잽싸게 컵라면 물을 올리고 밀린 빨래도 공용세탁기에 돌리고 방에 돌아왔다.     


이처럼 부지럼을 떠는 데는 크고 작은 이유가 있었다. 어느덧 여행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애초 계획했던 원고를 마무리하기엔 글이며 소재가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고, 다음달 진행하기로 한 프로젝트와 전시 관련 업무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늘 오후 5시에 잡아 놓은 예약이 있었는데, 하루 일과를 속히 마무리 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찾고 싶었다. 

오후 4시가 되어 노트북 전원을 끄고 샤워를 했다. 가져온 옷들이 죄다 츄리닝이었지만 그 속에서 단벌로 챙겨온 청바지를 꺼내 입고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예약한 식당이 있는 육림고개로 향했다. 약간의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이는 누구와의 약속도 아닌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바로 혼술.


이곳에 와서 혼밥은 많이 했지만, 혼술은 처음이었다. 평소 집에서는 자주 하는 것들이지만 바깥에서 시도한 적은 없다. 사실 이 십대 딱 한 번 해보았던 그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었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함도 있었지만, 왠지 앞으로는 없을 일일 거 같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봤다.

나름 용기를 냈다고 했지만, 오픈시간인 5시에 맞춰 간 것부터 나의 쫄보 기질은 또 발현되었다. 내가찾은 곳은 2인 테이블 2개, 4인 테이블 2개 그리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바테이블이 있는 다소 작은 가게로 ‘혼술하기 좋은’이란 단어로 무수한 검색 끝에 찾아낸 식당이었다. 평소 마시지 않는 첨가물이 들어간 증류주와 혼자 먹기엔 나름 비싼 안주(?)를 시켰다.   


내가 들어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 둘이 더 들어왔다. 그들은 나처럼 바테이블 구석 자리에 앉았다. 안주가 나오기 전까지 뭘할까 고민하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책을 꺼내 읽었다. 책을 가져간 것은 혼술하는 동안은 핸드폰을 안 볼 생각이었기에 혹시나 찾아올 적막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뭐 그때까진 나름 괜찮았다. 얼마 되지 않아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왔다. 


혼자 술을 따르고 혼자 음식을 먹으며 맛을 음미했다. 나쁘지 않았다. 술잔을 내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니 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이 타이밍에 책을 읽는 것은 왠지 웃길 거 같았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잔을 부딪히는 소리이며, 웃음소리가 흥겹기만 하다. 마지못해 주머니속에 넣어둔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한시간 정도가 지난 후 자리를 나섰다. 나름 없어 보이지(?) 않기 위해 술과 안주는 조금씩 남겼다. 

이번 혼술 계획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든 것이 아쉽지만 혼술을 하면서 느껴질 쓸쓸함과 외로움 그것을 느낀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로 인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은 것 역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최근 백종원이 출연한 술과 관련된 방송을 보았다. 술을 마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맛있는 안주보다 좋은 사람과의 맛있는 이야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순간, 그 누구보다 내가 돌아오길 바라는 그에게.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가장 맛있는 안주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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