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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Oct 24. 2021

청평사 가는 길

여행에세이 <외로워서 떠났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딱히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가 바뀌거나 날씨 좋은 계절에는 꼭 사찰을 찾곤 한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위에 들를만한 사찰이 있는지를 살핀 후 일정에 포함시킨다. 이번에 선택한 곳은 청평사다. 


청평사에 가는 방법은 두가지다. 소양호에서 배를 타는 방법과 차량을 이용해 오봉산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전자를 추천했다. 소양호에서 배를 타면 15분이면 갈 곳을 차량으로 가려면 시간은 배가 들고 좁은 산길을 달리다 운이 나쁘면 낙석을 만날 수도 있다 했다. 그럼에도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인지 모험심 같은 것이 발동한 것인지 반대길을 택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이 이어지다 보니 귀가 멍멍해지기도 하고 멀미가 오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30분 여를 달려 주차장에 도착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수풀이 뜨거운 가을 볕을 막아주고 있었다. 


청평사를 향해 가는 길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나뭇잎 사이로 투과되는 적당한 햇살, 졸졸졸 흐르는 개울 물소리, 바람에 비벼내는 풀냄새 등등 무심하던 마음과 굳어있던 감각을 하나둘 깨우기 시작한다. 조금 지나다 보면, '공주와 상사뱀'이라는 커다란 돌상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설화가 있는데 대략 이러하다. 




아주 오래전, 당나라의 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신분차이로 고백조차 할 수 없었던 청년은 상사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그는 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에 붙어 살았다. 궁에서는 뱀을 떼어내려 갖은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고, 공주는 궁을 나와 방랑하다 청평사에 이르렀다. 공주굴에서 하루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께 옷을 지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는 실화든 설화든 아프고 슬프다. 동상 근처로 쌓여진 돌탑 위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올렸다. 작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기를 바라며 그렇게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폭포 앞에 이르렀다.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하여 이름 붙여진 구성폭포.오색의 단풍으로 수놓인 하늘 사이로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물소리가 가락처럼 구성졌다. 마스크에 가려 답답했던 숨도 지난 며칠 풀리지 않는 문제로 답답했던 속도 씻겨내리는 것만 같았다. 

호젓한 숲길 끝 청평사 입구가 보였다. 사진도 찍고 안내판의 글들도 읽고 하다 보니 30분이면 갈 곳을 한시간 만에 도착했다. 곳곳마다 마주하는 이야기도 냄새도 소리도 풍경도 모두 달랐다. 정작 사찰을 둘러보는 데는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 같다. 목적지보다는 향해 가는 길이 좋았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시간이 더 의미있고 가치 있었다. 

그렇다. 청평사로 가는 길은 내게로 가는 시간이었다. 



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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