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의 핀볼과 장례식 준비3

기억의 사체를 어떻게 해야할까?

by stephanette

그릇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닦는 것을 좋아한다.

하얀 도자기의 질감과 두께

그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살아있구나 싶다.


'아이 앰 러브' 영화를 다시 봤다.

필터 효과의 반전이 좋다.

10년 동안 하나의 영화를 촬영했다는 것도,

러시아 억양의 이탈리아어를 익혀서 준비했다는 틸다 스윈튼도 좋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이탈리아의 부유한 집안의 생활을

집안의 수많은 일하는 이들과 안주인의 일상을

조용하게 따라가는 장면들이 좋다.

그래서, 긴 연휴의 잔잔한 휴가지를 가고 싶을 때 보곤 한다.


상실을 통해서

삶은 변한다.

변화된 삶이 꼭 행복을 의미하진 않는다.

행복을 내려놓으면,

평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례식을 어디에서 해야하나 생각하다가

며칠을 보내고 있다.


기억의 사체는

수많은 홍합들이 붙어 있어서,

홍합의 짧은 머리카락 같은 밑실(byssal thread)과

밑실접착판(adhesive plaque)들이 작은 점처럼 달라붙어 있어

해체를 거부한다.

접근을 거부한다.


이제 물 밖으로 나와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해풍에 바싹 말라버리고

검은 채도를 잃고

결국은

손만 대어도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녹슬어서 바스라지는

상자를

꺼내게 되면,

녹을 제거하고

약품 처리를 해서

마치 어제 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반짝이게 만들 수 있다.

금속 궤짝은 일상에 두고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을 열어보았다.

아직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억의 사체이지만,

나는 마음 속에서 살짝 미래를 훔쳐본다.


금속 궤짝 안에는 작은 반짝임들이 있다.

바닷물이 반쯤 차 있어서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모래인가

혹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생명체일까?


심해에서 쇠사슬에 묶인채 너무나 오랜 시간 잊혀진 상태로 있었을 때,

아마도 나는 그 존재가 너무나 공포스럽고 기괴한 역겨운 것일꺼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오랫동안 담궈두고도 잊어버리고 말았겠지.


이제와서 건져낸 그 궤짝 안에는

반짝이는 빛이 있다.

무엇인가를 닮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각형으로 썰려버린 심장에 들어와있던

은하수.

같은 것이라는 걸


그걸 알고 나서

격하게 아프던 것들이 잠잠해졌다.

그래도 급작스레 밀려드는 울음은 여전하다.


장례 절차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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