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족을 타인으로 채우고자 하는 것은 사랑일까?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by stephanette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은 자신의 부족을 타인으로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가지는 것’이라 착각한다.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끌리면, 그를 곁에 두고 싶고, 내 뜻대로 움직이길 바란다.

그가 나의 것이길 원하고, 내 공허함을 채워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랑은 이미 방향을 잃는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존재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자유를 함께 기뻐하는 일이지

그의 삶을 나의 결핍을 메우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소유형 사랑은 언제나 결핍에서 시작된다.

"나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너를 통해 완전해지고 싶다."

이 말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려움이다.

혼자인 삶이 두렵고, 내면의 공허를 견디기 어려워 타인을 통해 안정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곧 의존과 통제로 변한다.

‘너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감정은 상대의 자유를 제한하고, 스스로를 더 고립시킨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다르다.


그것은 내 부족함을 타인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온전함으로 타인을 만나는 일이다.

사랑은 얼마나 누군가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으로 얼마나 깊이 서 있는가에 달려 있다.


프롬은 말한다.


“성숙한 사랑은 ‘나는 너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가 아니라,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필요로 한다’이다.”


소유형 사랑은 불안과 집착을 키우지만, 존재형 사랑은 신뢰와 자율성을 키운다.

전자는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하고, 후자는 조용히 곁을 지킨다.

전자는 상처에 취약하고, 후자는 상처를 안고도 다시 사랑할 줄 안다.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원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향한 감정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내면의 자립성이 없다면, 사랑은 언제든지 두려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 위에야 비로소 깊은 만남이 가능하다.


사랑은 상대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로 너를 만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기술(Art)이다.

이는 훈련이며, 성찰이며, 나를 향한 나의 태도이다.


진정한 사랑은 성숙한 사랑이다.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낀다면,

아직은 그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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