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의 해체, 시스템의 재설계, 내면의 진화를 하며 방황하는 이유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 곳으로 진입하려는 것과 같다.
좌, 우, 천정과 바닥에 수없이 달린 문들.
그 복도를 걷다가
어느 문 앞에 멈춰 서고,
적절한 타이밍에
문을 열고 나아가는 일.
영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처음 안경을 썼을 때처럼
세상이 또렷해지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큰 방해물은
지금까지 나를 익숙하게 붙잡아온 에너지이다.
"그냥 하던 거 할래.
킬링타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게 더 편해."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되는 것들"
"난 새로운 것은 하고 싶지 않아."
"단지 슬픔에 빠져있고 싶어."
"난 고집불통이고 싶어."
그렇게 나는,
변화를 외면하는 나와 대면하게 된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는 일은
늘 막막하다.
알 수 없는 세계로 몸을 던지는 일은
예외 없이 두렵다.
전쟁터를 지나온 사람처럼
방어적인 자세가 몸에 밴 사람에게
새로운 미래는 특히 더 어렵다.
삶의 많은 부분들이 급속도로 변할 때,
그 변화에 생존하듯 적응하다 보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그렇게 길을 잃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멈추게 된다.
그래서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나의 위치를 점검하고
새롭게 만나는 관계들의 의미를 음미하고,
이미 떠나온 것들 속에서 배운 교훈들을 떠올려야 한다.
그 시간은 고립과도 닮아 있다.
스스로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묵은 감정, 낡은 시건들과 이별하는 일.
과거의 나에게 인사를 하고,
오래된 인간관계와 사고방식과 관점들에 작별을 고한다.
슬픈 일이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지체된다.
더 나아가지 않기로 마음먹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새로운 관계들과 일을 맞이하기 전까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버텨보아도
결국, 그 문을 열게 되어 있다.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방황을 멈춘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새로운 버전의 내가 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