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깊이가 끝도 없는 그런 대상 멋지지 않은가.
어릴 적 가장 곤욕스러웠던 기억은
늘 새 학기였다.
학생 인적 상황과 심지어 부모의 재산까지 그런 것들을 적어 냈었다.
늘 빈칸으로 채우지 못했던 란은
장래희망이다.
뭔가 되어야 하는 것도 그러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텅 빈 무(無)의 상태라
초등학교 저학년이 지나서야 대충 적당히 '간호사'라고 적었다.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고 누가 질문하지도 않는 그런 직업이라고
어렸던 나는 혼자 생각했었던 것 같다.
대학의 전공도 그저 점수를 맞춰서 넣었었고
다행히 그 업이 맞아서 현생을 살고 있는 정도이다.
직업이 맞는다기 보다는 직업 앞에 붙는 형용사를 내 마음대로 떼었다가 붙였다고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재작년 이후로는 그마저도 재미가 없어졌다.
일 년 남짓 글을 쓰면서
돌연,
장래희망이 생겼다.
적성에 맞는지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흥미는 있고
배우려는 열정도 넘쳐나는 것 같다.
도무지 정복할 수 없는 그 깊이가 끝도 없는 그런 대상 멋지지 않은가.
그래서, 나의 장래희망은 '힐러'이자 '나이트 워치'이다.
'에너지의 흐름을 타는' 힐러
에너지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힐러는 대면이나 같은 시간의 공유 같은 것은 의미 없다.
힐링의 대상은 거대하다고 해서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는 주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라.
흘러가는 에너지를 흘러넘치게 하는 정도의 작업을 하는 그런 힐러.
'세상의 경계에서 주시하고 기록하는' 나이트워치
심야에 홀로 깨어 말이 되지 않은 감정을
그 고요한 흔들림을 읽고 옆에 서서 주시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깊은 무의식, 감정의 심연을 두려움 없이
누구도 보지 않는 상처를 바라보고
이름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침을 위해 글을 쓰는 자,
나이트 워치.
이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도무지 정복할 수 없는 그 깊이가 끝도 없는 그런 대상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