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의 "거울"이 되지 않는 방법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 없이도 가능하긴 하다.

by stephanette

인간관계의 갈등은

거의 대부분

상대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람 둘이 만나면 서로의 어둠을 상대의 것이라고 투사한다.

강렬할수록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어둠은 자기 내면에 있던 것이다.


거울이 되지 않는 방법은 있다.

칼 융이 말한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을 거치면 된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거울로 작동하긴 하지만,

상대방의 투사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상처쯤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어둠의 농도에 따라 삶 자체가 다 끝날 수도 있다.

칼 융도 스스로 개성화 과정을 겪으면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았다고 회고한다.

그러니,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면, 그 고통의 길을 스스로 가게 될 리 만무하다.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인간관계의 심각한 갈등은

자신의 어둠을 들여다보라는 무의식의 강력한 초대이다.

우리는 필요한 딱 그 시기에 과업에 딱 맞는 그 사람을 자신의 삶에 끌어들인다. 이건 무의식이 세팅한 게임의 레벨이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길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웬만하면 죽을 것 같아도 성장하는 길로 가자. 어차피 회피해 봤자 레벨업을 하려면 같은 맵에서 무한 반복 말고는 방법이 없다.


개성화란 자기 안과 밖을 구분하고, 무의식에 의식을 끌어올려서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거울이 되지 않는 방법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개성화 없이도 가능한 "거울 되지 않기" 전략

1. 의식적 거리두기

“그의 감정은 그의 것”이라는 짧은 주문을 계속 상기한다.

개성화는 깊은 무의식 작업이지만, 간단한 분별 훈련만으로도 투사가 네 안에 뿌리내리지 않게 할 수 있다.


2. 몸 기반의 경계 세우기

누군가의 감정이 밀려올 때, 호흡을 길게 내쉬거나 어깨를 뒤로 젖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공간이 생긴다.

몸이 경계를 대신 만들어주는 셈이다.


3. 의도적 무반응 훈련

나르시시스트는 반응을 먹고 산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짧고 단조로운 대답(“네”, “알겠습니다”)만 하면, 그들은 자기 그림자를 비출 거울을 잃어버린다.


4. 외부 증인 만들기

혼자 거울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건 힘들다.

상담사, 신뢰할 만한 친구, 글쓰기 같은 ‘제삼자 증인’을 두면, 그 앞에서 스스로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


5. ‘거울’ 대신 ‘창’ 되기

개성화까지 가지 않아도, 자신이 의식적으로 상대에게 더 큰 그림이나 객관적 사실을 보여주면, 자신은 더 이상 반사하는 거울이 아니라 “창”이 된다.

거울은 상대의 얼굴을 돌려주지만, 창은 그 너머 풍경을 보여준다. 말이 "창"이지 쉽지 않다.

절대 멀리 할 수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웬만하면 도망가자. 항상 도주로 끝나는 글이라니.



개성화는 "완전한 주체성"을 세우는 과정이지만,

그전에도 작은 의식적 기술과 경계 설정으로 거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개성화는 궁극적인 길,

하지만 작은 실천은 당장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다.


사족: 다음 편 예고

개성화는

인간관계의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자신의 무의식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러니, 악성 나르시시스트를 만나서 그와 물리적으로 지속적 만남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깨달음 이후에는 자신의 심연으로 다이빙이 필요할 뿐.


개성화란,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인류 전체의 진화를 의미하고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관련 글을 자세히 쓰려니 시간이 부족하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

하루키 말대로, 글쓰기란 노예들이 모든 일을 대신 해주는 중세 로마 제국의 귀족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밥을 차려놓고 출근을 해야하는 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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