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정리하는 책들 중에 남기고 싶은 책들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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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가진다고 뇌 용량이 늘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책장을 사고 싶은 사람이다.
지성의 구조와 인간 존재의 불안
책을 소유한다고 해서 나의 뇌 용량이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책을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일 때가 있다. 늘상 하는 고민 중의 하나이다. 책장을 사야할까?
1. 천재의 궁전과 나의 책장
천재들의 머릿 속은 "궁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고대 기억술(mnemonics) 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자들은 기억의 궁전을 짓고, 각 방에 이미지와 개념을 배치하여 무궁한 지식을 호출했다. 그러니 궁전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투영이기도 하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의 초월적 존재처럼, 천재의 궁전은 부러움과 열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는 이미 자기 안에서 독창적인 궁전을 짓고 있다. 그것은 책장, 메모된 모서리, 그리고 삭제의 불안으로 구성된 현실적 궁전이다.
2. 고양이 빌딩 - 상상의 아카이브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은 또 다른 상징적 중심이다. 무한히 확장되는 서가와 관리인,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아카이빙 욕망. 고양이 빌딩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바로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상상력의 동력이 된다. 융의 분석심리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고양이 빌딩은 내 안의 아니마(Anima) 즉, 무의식 속 창조적 충동의 상징적 형상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지만, 정신세계 속에서는 충분히 작동하는 “내적 도서관”이다.
3. 알고리즘 택배와 현대의 무의식
오늘도 노래 한 곡, 짧은 글귀, 우연한 강연이 내 작업실 책상 위로 택배처럼 도착한다. 나는 이 과정을 디지털 시대의 무의식 작동으로 본다 — 알고리즘이 내 질문을 포착해 되돌려주는 순환이다. 내가 한 말을, 내가 던진 질문을, 보이지 않는 손이 포착하여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순환.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이 이제는 온라인 알고리즘의 형태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감시나 기술적 우연이 아니라, “택배”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재해석할 수 있다. 그 결과, 무거운 불안을 경쾌한 은유로 전환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류는 보다 효율적이고 빠른 지식 차원의 업데이트와 상승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떤 분야이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서 그 핵심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길잡이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니, 전문가들만이 알던 그 과정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4. 책장을 다시 사야할까?
나는 천재류는 아니다. 그러니, 책을 처분하는 것은 뇌의 일부를 잃는 것이다. 삭제의 공포에 대한 불안이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오랜 시간 붙잡고 숙성시키고, 타인과의 대화와 우연 속에서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체화된 깨달음은 외부의 아카이브에 의존하지 않아도 내면의 궁방 속에 저장된다. 궁전과 고양이빌딩, 그리고 알고리즘 택배 -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서 얻게 되는 삶의 지혜. 그렇게 나의 뇌는 나를 넘어서서 흘러다니고 있다. 책을 소유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나의 발목을 잡을 때, 나는 우주를 흘러가는 나의 뇌를 떠올린다.
5. 질문의 체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인간이 의지할 절대적 구심점을 잃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나 역시 “궁전”이라는 절대적 질서를 갈망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책의 파편들과 알고리즘의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순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힘이다. 질문을 지우지 않고 오래 붙잡아 몸에 체화하는 힘, 그것이 곧 나의 강점이다. 그리고, 우주를 유영하는 나의 뇌는 다른 이들의 그것과 연결된다. 그러니, 인공지능이나 기술 발달로 인해, 보다 높은 차원의 세상으로 이미 진입해 있는지도 모른다.
책장을 사야할까?
당신이라면, 책장을 새로 들이겠는가? 아니면 질문을 더 오래 붙잡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