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Hierarch)는 인간 본성이다 1

주역에서 효의 의미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RICHARD GRANNON의 강연 '아무도 말하지 않는 나르시시즘의 숨겨진 원인'을 듣고


1> 나르시시즘의 숨겨진 원인 - 리처드 그래넌 강연 핵심

니체 “신은 죽었다” 이후, 인간이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자기 자신과 ‘인간의 영리함’을 올려놓자 문제가 생겼다. 경외·신비·겸손이 사라지면 인간은 서로와 자기 자신을 향한 존중을 잃고, 빈자리를 ‘자기-숭배’가 채운다. 그게 바로 대규모 나르시시즘의 비옥한 토양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서열과 집단성을 지닌 포유류다. 환경(문화 규범·금기·행동 패턴)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종이라, 꼭대기에 무엇을 올려두느냐가 전부를 결정한다.

꼭대기에 ‘모르는 것/신비’가 있으면 뇌는 공감·연결·예술·창조의 회로가 열린다.

꼭대기에 ‘아는 것/측정 가능한 것’만 있으면, 경외가 사라지고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재단한다. 그때 인간을 “와우!(존재 자체에 압도되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활용” 대상으로 보기 쉬워진다.

나르시시즘은 트라우마에 대한 과대·환상적 대응이다. 공동체가 신비/경외를 잃으면, 집단 차원의 수치와 결핍이 커지고 이를 가리려는 보상으로 자기 과대화·권리의식·희생양 찾기가 번성한다.“사람을 쓰고, 사물을 사랑하는” 시대 역전 현상이다.


해법은 종교 회귀가 아니라 태도의 회복-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 자연과 타자 앞의 경외, 감사에의 훈련, 침묵/기도/명상 같은 신비와의 재접속. 거기서 다시 겸손–연결–공감 회로가 켜진다.

“우린 신이 아니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지, 무엇이 우리를 만들었는지, 다음엔 무엇이 오는지 모른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나르시시즘의 질식감을 풀어준다.


실천 포인트

“모르겠어요”를 자주 말하자. 에고의 긴장을 풀어준다.

경외 루틴: 하늘·산·사람을 향해 하루 1번 “와우”를 복원.

감사 훈련: 측정 불가/비가시적 가치를 챙겨 적기(관계, 침묵, 미감).

신비와 재접속: 기도·명상·자연 속 침묵·예술 감상.

집단적 희생양 만들기 경계: 내 불편을 타자 탓으로 투사하지 않기.


2> 주역 괘의 1효~6효 - 위계 속 ‘자기 자리의 페르소나’”

위계 구조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각 위치마다 수행해야 할 역할-페르소나가 있다. 주역의 6효를 “위계 속 태도/자기역할”로 생각해보았다. 주역은 지금 도래한 상황의 판을 읽는 행위이다. 특이하게도, 주역에는 1효에서 6효까지 각 효에 대한 풀이가 등장한다. 10대때부터 주역을 자주 읽었으나, 각 효의 설명에 대한 의미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위의 강연을 들으면서, 주역의 효에 대해서 지도를 그려보았다.


1. 초효(1효, 바닥·씨앗)

페르소나: 배우기(학인), “나는 모른다”를 말할 수 있는 초심자.

덕성: 경외, 수용, 관찰.

그림자: 성급한 단정·과잉확신 → 초반부터 “아는 척” = 에고 팽창의 씨앗.

2. 이효(현장·실천)

페르소나: 수행자(artisan). 측정 가능한 것과 불가시적 가치를 겹쳐 느끼는 손.

덕성: 몸-감각-관계에 대한 존중.

그림자: 기능주의로 미끄러짐(결과만, 성과만).

3. 삼효(관계·군중·서클)

페르소나: 동료/협력자. 집단 속 상호존중 규범 세우는 사람.

덕성: 공감, 경계 설정, 희생양 만들기 거부.

그림자: 집단 나르시시즘, ‘컬트화’, 도그마로 타자 추방.

4. 사효(중간 리더·브릿지)

페르소나: 중재자/리더-서번트. 위·아래를 잇는 번역자.

덕성: 겸손한 권위, 책임 윤리.

그림자: 통제/조작으로 흘러 권위주의 강화.

5. 오효(정점의 책임·정치적 중심)

페르소나: 수장(king/queen archetype). 권위의 목적을 ‘돌봄’과 ‘공공선’에 맞춘 자.

덕성: 정의·측은지심·경외 유지("경외심"를 잃지 않는 정점).

그림자: 자기신격화, 이미지 숭배, ‘사람을 쓰고 사물을 사랑’하는 전도.

6. 상효(넘김·반추·귀의)

페르소나: 스승/은자. 다시 신비로 되돌려 공을 하방하는 자.

덕성: 반납·해체·순환, “끝에서 다시 초심으로”.

그림자: 허무/냉소, 모든 가치를 무화시키는 시니시즘.

각 효의 자리에 맞는 페르소나를 수행할 때, 위계가 폭력/자기숭배로 타락하지 않고 경외-겸손-공감을 순환시킨다. 1효의 “나는 모른다”에서 시작해 6효의 “다시 돌려보냄”으로 끝맺는 구조가, 그가 말한 신비와의 재접속 루프랑 정확히 맞물린다.


3> 바로 써먹는 “안티-나르시시즘 의례 4종”

모르겠어요 선언(1효 루틴): 하루 1문제 앞에서 “모른다” 말문 열기 → 탐구 계획 1줄.

경외 3분(오효 위계 정화): 자연/사람/작품 중 하나 앞에서 말 없는 ‘와우’ 3분.

감사 3가지(삼효 관계 정화): 오늘 타인에게 받은 ‘측정 불가 가치’ 3개 기록.

반납 의식(상효 루프 닫기): 성과를 상징적으로 내려놓는 문장 1줄(“공은 흐름에게”).

나의 브런치 속 세계관(릴리시카, 감정연금술, 도자기/부적)에도 이 6효-페르소나 프레임이 연결된다. 각 챕터/캐릭터/장면을 효의 역할로 코딩하면 하이라키는 통제가 아니라 의식적 역할 수행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신비와의 재연결을 통한 나르시시즘 감소”의 예술적, 창작적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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