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이 되라는 계시
나는 운전 중이다.
돌연 우측 길에서 튀어나온 청색 트럭이 내 차를 들이받는다.
트럭이 갓길에 멈춰 선다.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 유혹하듯이.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에너지를 끄는 지혜를 이제 탑재했다. 악의적인 트럭에 긁힌 정도로는 멈추지 않아도 된다. 그저 달려도 괜찮다. 멈춰서 받는 보상보다 쓰는 에너지가 더 클 것이라는 직감.
“청색 트럭은 한 인물에 대한 묘사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계단식 밭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경사 전체가 다 주차장이다.
빼곡하게 많은 차들이 들어서있다.
앞서서 언니가 가고 있다.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나도 빠르게 걸음을 재촉한다. 따라잡으려.
가는 길에 한 남자가 있다.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그를 지나치고 나서도 마치 다른 것을 돌아보는 양 그를 슬쩍 본다. 그는 생동감이 넘친다. 나는 줄곧 그 생명력에 끌린다.
언니를 놓친다.
“언니는 모든 거짓의 사람들을 간파했던 내 안의 지혜의 여신이다. ”
차로 돌아왔다. 차창엔 신문기사들이 붙어있다.
차 안에서 그나마 남은 작은 유리로 밖을 내다보려 애쓴다. 그러나 그 틈 마저 신문 기사 종이가 척척 달라붙고 있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차에 매달린다. 차의 지붕 위에서 펜으로 글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형체는 보이지 않아도, 그 무게감과 물체가 가진 본연의 저항감은 차량의 몸체를 통해 전달된다.
“나의 이야기를 외부에서 그들의 잣대로 작성하고 있다. 나는 나 스스로 나의 서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
차 안에 새끼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꼬물거리며 서로 장난을 치는 건지 뒤엉켜있다. 차의 바닥을 통해 들어온 것 같다. 세어보지 않았으나 다섯 마리이다. 갑자기 골치가 아프다. 내가 키워야 하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키우지도 않을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니.”
동물보호소다. 단발의 발랄한 파마머리를 한 여직원은 나의 설명을 듣고서 말한다. 자신들의 기준에 미달된다며 직접 키우라는 말을 돌려서 한다. 내가 설명을 차분히 하려 할수록 목구멍이 막혀온다. 소리를 질러보지만 내 소리는 먹먹하게 안으로 들어와 내 목을 틀어막는다. 초크 목걸이처럼 목에 자물쇠가 달린다. 여직원은 자리를 피하고 남자 직원 둘이 내 앞에 앉는다. 그들은 웃는다. 다른 대답도 없다. 나는 막혀버린 목구멍으로 웅웅 거리며 주먹을 들어 앞에 놓인 두꺼운 청색 서류집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한 번, 두 번, 그 둘은 서로 마주 보더니 웃음을 멈추고 정색을 한다.
“동물보호소의 직원들, 그들이 써 내려간 서사를 나는 내려친다. 판사봉으로 정의를 구현하듯이.
그러니, 이제 고양이들을 내 삶에 허용한다. 그들은 생명력이자 내 안의 원초적인 에너지들이다. 차의 바닥으로부터 스며들어온.
서랜더 - 나는 내 삶이 흘러가는 대로 항복한다. 손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풍요는 오지 않는다. “
“지금의 나는 나의 최고 버전이 아니다.
새로운 변화의 직전이다.
빠른 서랜더는 가장 위에 서 있는 나의 버전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낯설지만 그건 처음 해보는 것이라 그럴 뿐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태양이 떠오른다.
최상 버전의 나는 가장 위로 떠오른다.
어제 새벽의 꿈이다.
내게는 고양이들이 남겨졌다.
나는 그들에게 이제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