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휴대폰 그 각각의 글쓰기
* 트라우마 주의 (childhood violence, emotional abuse)
본문에는 아동기 체벌에 관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불편해질 수 있으니, 필요한 경우 천천히 읽어주세요.
해운대에는 아트박스가 있다.
어릴 적부터 꿈의 장소이다.
국민학교 때 집안일을 하면 100원이나 50원을 받았다.
넉넉한 살림에 왜 나에게는 그렇게 가혹했는지 이유는 모른다. 돈의 액수 이야기는 아니다.
“다꾸를 좋아한다.”했더니 둘째가 물어본다.
“다꾸가 뭐야?”
“잉? 그걸 몰라?!”
“모르겠는데..”
“다이어라 꾸미기라 쓰고 스티커 모으기라 읽는다.ㅋ“
500장짜리 유선노트
두껍고 작은 스케치북
크래프트지의 무선 노트
‘양지사의 PD 수첩’
그런 것들을 애정한다.
1.0 mm 볼펜이나
0.1 mm 제도용 수성펜도 애정한다.
수도 없이 눈을 현혹시키는 스티커들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하지만 모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아름다운 아이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국민학교 때 태어나 처음으로 용돈을 쓴 것이
100원짜리 스티커를 산 것이다. 연두색과 초록색의 그러데이션 배경에 네 잎 클로버와 식물의 잎사귀들을 그린 스티커였다. 단 한 번도 떡볶이조차 사 먹지 않았다.
어째서 다들 흔히 하는 것들을 나는 금지당한 채 살았을까?
이상한 지점이다.
처음 구입한 스티커는 그대로 엄마에게 들켰다.
세 시간을 맞았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음과 호흡이 뒤섞여서 들숨이 들이쉬어지지 않을 때까지. 화장실 늘 가겠다고 허락을 받는 나를 보며
엄마의 얼굴에는
순간 ‘순도 100%의 기쁨‘이 웃음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채벌 그 시간들이 허망하게도
스티커는 빼앗겼다.
엄마의 전리품은
그걸 좋아하지도 않는 언니에게 넘겨졌다.
인과관계는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스티커를 사고
노트를 사고
펜으로 글을 쓰고
‘다꾸‘를 한다. 이제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