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정의론으로 본 인간의 심연
정의의 발생은 복수의 초월과 맞닿아 있다.
복수의 심리 구조
인간의 심연을 파헤친다.
“정신의 가장 깊은 상처는 복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고통받는 자의 의지는 복수를 원한다.”
(Der Geist der Rache – das, meine Freunde, war bisher des Menschen beste Betrachtung…)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은 시간을 바로 잡고 싶어 한다.
과거의 그 일을 되돌리고 싶다는 본능이다.
복수심은 존재의 원한에 사로잡힌 시간의 질병이다.
“그들은 정의를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복수를 원한다.”
(“Sie nennen es Gerechtigkeit; was sie aber wollen, ist Rache.”)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은 도덕과 정의의 언어로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응징의 욕구가 흐른다.
정의의 심리적 근원을 폭로한다.
인간은 도덕적 언어를 자기 복수심의 은폐 장치로 사용한다.
복수는 사회 제도 속에서 어떻게 정의로 진화했는가?
“정의는 복수심을 가진 사람들의 타협의 공식이다.
정의는 복수를 통해 스스로를 초월한다.”
-『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정의는 복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질서로 조직하고 제도화한 힘의 형식이다.
달리 말하면,
정의는 복수의 진화이다.
“복수는 약자의 본능이며,
정의는 강자가 복수를 관리할 때 생겨난다.”
-『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복수는
사회적 위치에 피해를 입은 자들이 하는 것이다.
'피해 입은 주체'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지위(地位, Status)를 공격하면,
자신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로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복수는
그 평가 기준이 외부에 있다.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은 상대를 파괴한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하는 복수는
그 시작도 타인이고,
그 기준도 타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복수는 약자와 피해자들이 하는 행위이다.
주체성 상실의 증거이다.
이는 과거에 시간이 멈추는 것이다.
현재를 과거와 바꾸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복수는
원한의 순환을 만들어가는 결과를 낳는다.
정의는
복수를 초월한다.
미래 지향적이며
가치의 재배열을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행위이다.
내면이 안정적인 사람은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안정적인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정의는 얼마나 쉽게 복수로 타락하는가.
“복수를 넘어서지 못한 정의는 아직도 노예의 도덕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복수가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폭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진정한 정의는 응징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조의 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의 정의는 복수인가, 초월인가?"
복수를 꿈꾼다면, 먼저 살펴보자.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 마샤 누스바움, '분노와 용서 - 적개심, 아량, 정의'를 읽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