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조건

나쁜 짓을 반복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조건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 최명기 원장, '본성이 못된 사람이 잘 살 수 밖에 없는 이유' 강연을 듣고


나쁜 짓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에 대해 최명기 원장은 세가지를 제시한다.

겁이 없다.

충동적이다.

남에게 동정을 잘 못 느낀다.


왜 악을 저지르는가. 악의 3가지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겁이 없다” 두려움의 결여, 도덕적 상상력의 결여

겁이 없다는 것은 결과를 상상하지 못하는 상태, 즉 행동의 파장을 감각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신경생리학적으로 보면 편도체(Amgydala) 의 반응이 약하거나 무뎌진 경우,

공포나 죄책감의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즉,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는 장면을 상상해도 내면의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상태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불렀다.

“그들은 단지 생각하지 않았다.”

즉, 두려움이 없다는 건 도덕적 상상력이 결여된 상태이다.

두려움은 사실 윤리의 기초이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이라는 상상력에서 공감이 생긴다.


2. “충동적이다” 사유의 부재, 시간 감각의 붕괴

충동성은 ‘지금’만 존재하는 의식 구조이다.

시간의 선형적 구조(원인–결과)가 무너지고, 쾌락과 분노가 ‘즉시의 욕망’으로 작동한다.

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감정(특히 분노나 쾌락)이 이성보다 빠르게 행동을 결정한다.

그들은 생각하기 전에 이미 움직인다.


니체는 이것을 “반응적 인간(Reaktive Mensch)”이라 불렀다.

즉, 자율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타인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존재.

이런 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충동의 통로이다.

사유하지 않고, 흐름에 휩쓸리는 존재.

충동성은 악의 즉각성이다. 생각이 부재한 곳에서 악은 번개처럼 일어난다.


3. “남에게 동정을 잘 못 느낀다” 공감의 결여, 인간적 연결의 단절

이건 악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조건이다.

왜냐면 악이란, 타인의 고통을 나의 세계에서 지워버리는 행위이다.

공감(empathy) 은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신체에서 재현하는 능력’이다.

이는 거울뉴런 시스템의 작동이다.

그런데 이 공감 회로가 무너지면,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관한 배경 소음”처럼 들린다.


레비나스는 “윤리란 타자의 얼굴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즉, 얼굴은 ‘나에게 너의 고통을 멈추라’고 말하는 비언어적 절대명령이다.

타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악은 책임지지 않는다.

공감이나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그 얼굴을 사물로 본다.

타인을 ‘감정적 배경’이나 ‘도구’로 전락시킨다.

동정심의 부재는 타인을 실재로 느끼지 못하는 영적 맹목이다.

그러니, 타인을 자기 세계의 원칙 안에 끌어들여 가두는 일이다.

이는 타인의 세계를 부정하고 파괴한다.



이 세가지의 측면들은 반복적으로 악을 실현하게 한다.


악의 세가지 조건으로 '복수'를 바라보았다.

복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악은 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다.

복수는 타인의 행위에 대한 반응이자 즉각적인 응징이다. 그 기준은 타인에게 있다.

복수는 타자의 세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원칙으로 다른 세계를 침략하는 식민지화의 일종이다.



그래서

나는 고통 속에서도,

나의 기준을 외부에서 내 안으로 가져온다.

나는

생각하고

지연시키고

공감의 관점으로 타인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정의는 '지연'되고 '계획'된 '복수의 진화'이다.

아니, 이를 넘어서서 정의는 '결여를 자각한 자의 창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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