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애인이 등장하는 꿈이라. 나른한 주말의 오후.
*사진: Unsplash
바삭바삭한 요가 깔려있다.
80년대의 목조 인테리어이다. 다행히 그레이가 아닌 밝은 원목 색의 인테리어이다.
그런 정감 있는 손때 묻은 듯한 공간을 좋아한다.
주인 할머니가 뭔가 필요한 게 없냐는 듯이 창문으로 인사를 하고 간다.
스프링처럼 튀어나온 애인이다.
유학을 가느라 헤어진 예전 애인이다.
"어? 언제 귀국했어?"
꿈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로 진행이 되어야겠지만, 꿈속에선 헤어진 적이 없는가 보다.
그는 주기적으로 태닝이라도 하듯이 그을린 듯한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몸의 소유자이다.
수영 강사를 오래 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멋진지 모르는 그런 남자의 태도를 나는 애정했다.
농촌에서 밭일이라도 하다가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듯한 그런 잔근육
그리고, 그런 순수하고도 소박한 태도는
반전매력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꽁냥꽁냥한 대화가 오간다.
저녁을 뭘 해 먹을까 그런 이야기들.
언제나 일상의 단순한 언어들이 다정함을 만들어낸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리고 가끔은 시나리오를 쓰거나,
가끔은 꾸며낸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뻔히 보이는 그런 거짓말들을 나는 믿는 척해주었다.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글과 말을 잘하니 거짓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믿는 순진함이라니.
아, 유학을 갔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났었나 보다. 꿈속에서도 만나지 않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귀걸이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걸 보여달라고 했다.
나사 모양의 볼드한 귀걸이들은
내 손으로 건네졌을 때,
매우 정교하게 세공된 핑크색의 얇은 철사들로 장식된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양쪽 귀걸이는 디자인은 같으나 크기가 다르다.
한쪽은 여자의 것이다. 헤어졌나 보다. 그러니 헤어질 때 귀걸이를 다시 받고 아직도 하고 다녔구나.
나의 손에 쥐어진 귀걸이는 그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촉감으로 말해준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나의 조용한 시선에 그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숙인다.
그의 모습은 나의 추측에 대해 "YES"라고 대답한다.
작은 귀걸이를 들고 "이거 나 줘!"라고 했다.
그는 "그래, 가져라."라고 숨도 안 쉬고 바로 대답을 한다.
딱히 그럴 필요도 없는데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난 게 뭐 어때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말을 하진 않는다.
귀걸이를 구석 어딘가에 놓아둔다. 당장 귀에 걸 생각은 없다.
"우리 몇 살 차이야?"
갑자기 그가 물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이 하얗다.
"글쎄..?"
"8살! 8살이잖아!"
"아 그랬나?"
"너무하는군."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에 대한 것들은 당연히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듯이.
"모를 수도 있지 뭘. 난 늘 29인데."
밖에는 고양이라도 어슬렁거릴 것만 같은 햇살 좋은 그런 날이다.
꿈에서 깨었다.
꿈속에 계속 있었다면,
풍로에 근처 재래시장에서 사 온 생선이라도 구워 먹었을 것이다.
뒹굴뒹굴하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주말 오후의 그런 나른함 속에서.
오늘 새벽, 방금 갓 잡아 올린 꿈이다.
*이미 오래 전의 인연이라 지금 그가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진 않다. 뭘 하든 알아서 잘 살거라 생각한다. 즐거운 꿈에서 나와줘서 고맙네. 나도 잘 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