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화'는 왜 악의 기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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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나와 얼마나 닮았는가에 따라서 그 강도가 달라진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나(self)'가 있다.
그 주위를 따라 원이 퍼져나가며,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도 함께 커진다.
가장 안쪽의 원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이 영역에서는 공감이 가장 쉽고,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진다.
그 다음 원은
나와 많이 닮은 사람이다.
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친밀함과 이해가 유지되지만, 약간의 거리감이 생긴다.
그 다음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다.
이 지점에서 공감은 줄어들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감정이 단절된다.
가장 바깥 원은 비인간적 존재로 인식되는 타자이다.
즉, 상대방을 대상화하면,
공감 대신 무관심과 혐오가 자리한다.
타인에 대한 공격이나 파괴 등의 악은
다른 이들을 대상화할 때 그 기반에서 자란다.
원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공감은 연민을 진화할 수 있다
연민은 '나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낄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때 우리는 나의 경계를 넘어, 낯선 존재와도 마음의 연결을 시도한다.
타인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에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사이코드라마도 결국 상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그의 대사를 말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직접 살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연륜이 쌓일수록,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만큼 연민도 커진다.
공감은 나와 타인의 유사성에 따라 층위를 가진다.
그러나 진정한 연민은
그 유사성을 넘어, 나와 다름 속에서도 연결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공감은 닮음에서 시작되지만,
연민은 다름 속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