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비의'의 핵심 - 분노는 원수의 얼굴을 한 스승이다.
사진: Unsplash
용은 자신을 향해 분노하며
자신의 꼬리를 삼킨다.
- 영적 연금술:
『헤르메스 비의, The Hermetic Arcanum』
번역과 주해, 이호창 역/해설. 116쪽
책의 표지를 처음 보고 생각난 것이 우로보로스이다.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
그 내용이 2장 2절에 나온다.
내 안의 용을 길들이는 방법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의실에서 마주하는 상대
혹은 가족 중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
어째서 그런 강렬함이 일어나는지 늘 궁금했었다.
그 감정은 상대를 해치고자 하는 더 강렬한 분노로 불타오른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분출되기도 하고, 혹은 꾹꾹 눌러 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로 인해
정신과 육체는 피폐해진다.
정신과 육체가 아픈 것은 이러한 내면의 격렬한 에너지를 제대로 변환시키지 못해서이다.
즉,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해서이다.
헤르메스의 비의
그 핵심 중 하나는 내면의 원소들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불의 원소는 '분노'이다.
헤르메스 전통에서 인간은 소우주로 그 안에 우주의 네 원소-불, 물, 공기, 흙이 들어있다.
그중의 불은 의식과 의지의 상징이자 동시에 파괴의 불꽃이다.
그 불이 무의식의 욕망과 결합하면 분노, 질투, 폭력성이 되고,
의식의 중심인 자기(self)와 결합하면 통찰, 의지, 영감이 된다.
내 안의 분노를 다루는 일은
그 불의 방향을
타인에서 내면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파괴의 불에서 빛의 불로 전환하는 연금술적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헤르메스적 비의의 실천적 의미이다.
융은 심리학과 연금술에서 이런 헤르메스적 불을 리비도로 봤다.
분노, 욕망, 에로스 같은 원초적 에너지는
너무나 강렬하여 단순하게 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빙산 위의 작은 조각은 그 아래의 중량을 어찌할 수 없다.
상징화를 통한 의식화가 필요하다.
그러니, 융의 개성화 과정에서도
분노는 자기(self)가 자아(ego)를 뒤흔드는 첫 신호로 등장한다.
그대 안의 불길을 외부로 내보내지 말고
그대의 중심으로 돌려 내면을 비추는 횃불로 바꾸라.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용의 이미지는
외부로 향하던 분노를 변환하여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은
사실, 자신의 무의식의 한 조각이다.
자신이 되고 싶었던 그 무엇
혹은 자신이 욕망하지만 억압하고 눌러두었던 저 깊은 심연에 깔려서 잊힌 그 무엇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거울이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는 경우
그런 격렬한 분노와 감정들은 째깍거리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그러나 이것은 두 세계의 붕괴이자
각자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전조이다.
분노의 대상은
처치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을 바라보게 해주는 영혼의 스승이다.
리비도의 생명력
그 에너지
분노는 금속을 녹이는 불이다.
의식은 그 불로 자신을 단련하는 도가니이다.
자신을 해치고 타인을 공격하는 그 강렬한 에너지로
도가니에 불을 지펴야 한다.
스스로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이것이 자신의 용을 길들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