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고자 한 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닌 존재에 대한 인정
*사진: Unsplash
글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업로드를 할 필요는 없다.
혼자 일기장에 써놓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과거에 받았던 수많은 칭찬과 인정들에서도 왜 나는 한편으로 공허했을까?
어째서 칭찬은 받아도 받아도 부족할까?
"잘했어."
"대단하네."
"역시 열심히 하는구나."
그건 결과를 향한 칭찬이다.
내가 원한 건,
"너라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버티는 네 마음이 존경스럽다."
이렇게,
그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온갖 세상 짐을 짊어지고 살아온 나에게
누군가가 인정을 해주기를
나는 마음속 깊숙이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존재의 인정
칭찬의 방향이 다르면,
그건 공허함으로 들린다.
그래서 마음이 닫히고 화가 난다.
나를 본 게 아니라,
그저 하는 말이구나.라는 섭섭함이 불처럼 올라온다.
그리고 난 그런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다.
칭찬이 들려오면,
억눌려 있던 결핍이 동시에 깨어난다.
아이러니하다.
좋은 말을 들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 말이 채워지지 않았던 과거의 허기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의식 아래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혼자 버티던 시간들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던 나의 모습들
현재의 칭찬이 과거의 상처를 긁는 손이 돼버린다.
그건 화가 아니라,
오래 눌러둔 슬픔의 폭발이다.
칭찬은 권력의 뉘앙스가 묻어 있다.
진심 어린 칭찬이라도
평가자의 위치에서 의도성을 가지고 내뱉는 말이면
그건 듣는 입장에서는 통제의 언어로 들릴 수 있다.
"나의 가치를 네가 판단하나?"
의례적인 칭찬 그런 것은 더 좌절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
다른 이들에게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했던 나는
그 칭찬조차 경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결핍과 분노는 "이제는 나를 내가 인정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나는 더 이상 외부의 인정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누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이 진짜 나의 존재를 향해 있지 않으면 거부감이 올라온다.
그건 성장의 증거이다.
이제는 나의 영혼은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스스로의 시선을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칭찬도 인정도
거부하지도 않고
더 많은 것들을 바라지도 않는다.
나의 진짜 고통과 노력의 깊이를 보지 못한 채 건넨 말처럼 느껴졌던 칭찬
그 의미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단순히 "잘했다"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외로웠겠다."
"그 무게, 견디느라 고생했다."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의식으로 꺼내어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그 말을 건넨다.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인정과 칭찬을
하나하나 적어본다.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나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리고, 아이가 빛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해 준다.
그게 내가 그토록 찾던 진짜 칭찬이자
"사랑이라는 형태의 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