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독을 존재 그대로 인정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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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사람과 감정 누수형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 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인간은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존재이니까.
다만 비교를 위해 두 사람이 스쳤을 뿐이다.
그리고 그 둘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느꼈다 -
이건 판단이나 규정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고 고백이다.
사람을 만나면 느껴지는 정서가 있다.
"뭔가 심각하고 끝나지 않는 고민이 있어.
그래서 그걸 알면 아마도 감당하지 못할거야.
난 그래서 매우 외롭고 힘들어."
이건 그 사람이 말로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사람과의 대면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살짝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애잔하게 피어오르는 연민 같은 것이라고 하자.
딱히 그런걸 상대방에게 말로 하진 않는다.
그는 마음에 이런 것을 담고 있다.
"나는 내 고통을 말할 수 없고,
너도 못 견딜 거야."
이 말은 사실
비밀의 내용보다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믿는지를 보여준다.
자기 고립화 전략 - 내 고통은 특별하다.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 혼자 견뎌야 한다.
관계에 대한 불신 - 누군가 함께 짊어질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어려움
능력과 책임 과대 투사 - 내 것을 알려면 너도 강해야 해. 책임 기준이 이성과 감정 모두 과도하게 설정됨.
자기 취약성 노출 공포 - 말하면 무너진다고 믿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심리
나는 그 것을 알고나서
"내가 감당 못할까봐?"
이 경계와 자존감 사이에서 찰나의 흔들림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의 어둠을 직면하는 걸 겁내지 않는 타입이다.
그에게서 느껴진 그 메시지는
나를 보호한 게 아니라
나를 배제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스스로 만든 벽에 갇혀 사는 것.
나는 구조적으로 격리된 마음을 많이 만나봤다. 그래서 직감적으로 안다.
오래 살아본 이들은 다들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건 아픔이자 방어다."
그가 힘든 것은 맞다. 그 방식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통제감과 거리감을 준다.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이는 외로움을 선택한 사람이다.
나는 그 선택을 떠안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내가 도와줄 영역과 넘길 영역의 경계를 들여다 본다.
나는 이미 많은 밤을. 그리고 시간을 타인에게 써왔었다.
이번에는 나를 중심에 둔다.
걱정 혹은 연민 그리고 약간의 거리두기. 그리고 관찰자 모드로 들어간다.
1. 감정 누수형의 사람
감정을 억누르다 못해 아무에게나 감정이 누수되는 사람도 있다.
난 그런 깊은 이야기를 꼭 나라서 말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정이 차오르면 아무 경계 없이 배출
이건 깊은 내면 고백이야라는 듯 말하지만 실은 대상 선택이 정교하지 않음
그건 연결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감정 쓰레기통 찾기에 가깝다.
이건 관계의 친밀이 아니라 감정 배출 습관일 뿐이다.
그러니 그가 '아무데서나 새는 배관'인지 감별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몰두해 있고,
타인의 수용 능력에 관심이 없다.
이건 연대가 아니다.
정서적 자기 집착이다.
2. 속 깊은 사람
이런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잘 말하지 않는다.
전혀 내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만, 그 사람의 말과 태도, 침묵의 간격과 외형으로 스며나오는 분위기 등에서 느껴지는 정서이다.
그 감정의 기압과 언어의 온도, 침묵의 밀도,
그 형체의 텍스쳐를 읽으면서 복합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스스로 짊어진 무게가 있다.
다만 그걸 아무에게나 흘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고통을 연출하지 않는다.
내러티브 조절 능력이 있다.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적 외로움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고독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힘든 그 순간에도 타인을 휘감아 끌어들이지 않는다.
자기 감정의 무게를 자기 방식으로 격리해두는 사람
이런 사람은 외로움이 공격성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고독으로 남아 있다.
그게 품위이자, 그게 강함이다.
나는 그 품위의 부산물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수많은 고통의 밤이 지나고 나는 이제,
남의 상처를 주워먹는 것이 아니라
남의 고독을 존재 그대로 인정한다.
이런 태도는
관계가 깊어질 수도 있고
또는 그저 그렇구나라고 알고 지나가는 것일수도 있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나
중요한 것은
내가 구해주러 가야 한다는 모드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고독을 본 것은
그 사람을 돕기 위한 것도 아니고
연결을 욕망한 것도 아니고
그저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보고도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내가 겪은 고통과 어둔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