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사건의 형태로 우리를 깨운다.
우리는 종종 운명 위를 걷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택'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은 '자유의지의 가면'이다.
실상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오래된 상처, 두려움, 인정 욕구 같은 무의식의 프로그램이다.
운명은 사람을 통해 무의식의 언어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걷는 길이 '부서짐의 계절'임을 모를 수도 있다.
겉으로는 평정해 보이고,
이성적으로 말하자민
사실 육체와 말 그리고 시선은 이미 운명에 끌려 다니고 있다.
우리가 자기 운명을 알지 못할 때,
운명은 사건으로써 우리를 일깨운다.
"일어나"
"일어나"
"어서 눈을 떠"라며
그 흔들림은
고통의 형태로 오기도 하고,
상실로 오기도 한다.
내 삶에서 고통 중에 있으면서
한 가지 얻게 된 능력이라면,
다른 이의 삶을 보며 미리 알게 되었다. 예감 같은 것이다.
그래서 파국을 막아주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은 별 소용이 없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해놓으려 해봤자
점점 더 꼬여가는 타임슬립 영화처럼.
나비효과다.
선의의 작은 방해로 시간은 점점 더 지체되기만 할 뿐이다.
기차의 브레이크를 붙잡으려 애쓴 이유도,
파멸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멈췄다.
이는 냉정함도 이기심도 아니다.
"각자의 부서짐에는 신의 타이밍이 있다."
타인의 영혼이 언젠가 스스로의 겨울을 통과하기를 바라는 조용한 기도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극단의 그 끝을 통과해야만 다시금 우리는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한다."
미친듯이 질주하는 기차는 그 광기로 인해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의 시작에서
그 다음에 대한 설명을 들어봤자 그건 너무나 먼 곳의 메아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