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문학을 뒤집어 놓은 천재 소녀, 메리 셸리와 그 남편에 대하여
*사진: Unsplash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이다.
원래 이름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급진 철학자인 아버지와 페미니즘 선구자인 어머니, 태어날 때부터 사상이 폭발하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대때 프랑켄슈타인을 썼다.
여행 중이던 제네바에서 바이런, 셸리, 동생 클레어와 함께 괴담 쓰기 놀이를 하다가 '악몽 같은 꿈'을 꾸고 이를 기반으로 이 소설을 완성한다.
창조자의 책임, 과학의 오만, 인간 조건의 비극 같은 현대적인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 작가이다.
평생을 죽음과 상실을 겪고, 남편 퍼시가 죽은 뒤에도 그의 작품을 정리하고 보존하는 데 헌신한다.
그녀는 삶도 죽음도 문학도 모두 끝까지 책임져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퍼시 비시 셸리는 메리 셸리의 남편이다.
그는 혁명가이자 시인이자 철학적 급진주의자이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대표였으나 그는 그 시대의 '문단 체질'이 아니었다.
반기독교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이라 대학에서 퇴학 당했다.
시적 감수성은 뛰어났으나,
자유, 해방, 혁명, 반권력 같은 주제를 시로 폭발적으로 풀었다.
「Ozymandias」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권력의 무상함이라는 테마는 메리의 프랑켄슈타인과 평행 사유를 달린다.
29세에 요트 사고로 사망한다. 몸이 떠밀려온 뒤 메리는 그의 심장만 따로 보관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리언과 리 헌트가 장례를 치뤘다.
퍼시는 시적 직감과 정치적 사유가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빛이 너무 강해서 일찍 꺼진 별'
셸리 부부는 평행한 사유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 둘은 메리가 16세에 처음 만난다.
퍼시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로의 정신과 사상이 너무 강하게 끌려서
당대 사회를 뒤흔드는 사랑을 시작한다.
서로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사고의 결합
퍼시는 메리의 사유에 불을 붙였고
메리는 퍼시의 이상을 구체적인 이야기와 형식으로 잡아내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과 오즈맨디아스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둘의 머릿속이 실제로 같은 축에서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 둘의 사유는 지금도 살아 있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창조할 수 있는가?
책임 없는 창조는 가능한가?
권력은 왜 무너질 수밖에 없는가?
시간 앞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
누구도 보지 못한 내면의 비극은 어떻게 말이 되는가?
이 질문은 지금 인공지능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오늘날 프랑켄슈타인과 오즈만디아스를 다시 읽는 것도
21세기의 질문을 19세기의 두 영혼에게서 끌어오고 있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