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에 대해서

선물이 지닌 상징과 의미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작년에 만년필 케이스를 샀다.


선물을 할 때면 나는 늘 두 개를 산다.

하나는 선물을 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나를 위해서.


어느 분께 드려야할지 정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만년필은 품절이 되어서 아쉽게도 구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버전의 만년필을 주문했다.


선물을 할 때면 그렇듯이 두 개를 예약했다.

하나는 선물을 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나를 위해서.


내년에야 제품이 다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이 만년필과 만년필 케이스를 받는 이는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함께 걸은 셈이다.


선물에 담긴 상징을 매우 애정한다.

세종대왕의 곤룡포가 새겨진 펜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


이 말이 펜 상자 안쪽에 새겨져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건 알 수 없다.


외교술과도 같다.

상징을 통해 선물을 하는 것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위한 염원과 애정을

선물의 종류와 색상 그 질감과 담긴 뜻으로

미래를 위한 하나의 기도로 보내는 의미이다.



만년필이란

"쓰기의 도구가 사고방식과 주체성을 만든다."
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변형하면

만년필은

'사유가 몸을 통과해야 종이에 각인되는 장치'이다.


기호이자 몸의 연장이자 감각적 사고의 촉매이다.

글쓰기는 손의 움직임에서 탄생한다.

쓰기 도구는 텍스트의 리듬을 결정한다.

필압과 잉크 흐름은 '사유의 감각성'을 반영한다.


직사각형의 종이의 모양과 크기가

우리의 생각의 한계를 무의식 중에 만들어가듯이

필기도구의 질감과 유연한 흐름 그리고 펜의 강도와 표면에 대한 마찰은

사고의 흐름을 조율한다.


나를 위한 만년필 케이스에는 세 개의 펜이 들어간다.

하나는 자바펜 엠보 0.7mm 샤프

또 하나는 1.3mm 샤프

그리고 한 자리는 아직 비어있다.


연필보다도 더 굵은 샤프로 낙서를 한다.

부드럽게 미끌어지는 흑연은

글자가 그림으로 변하기도 하고

여러 단어들이 중첩되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가끔은 만트라를 그리기도 한다.


"필기도구는 사고의 구조를 바꾼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만년필은

느린 속도로 깊은 사유를

번지는 잉크로 무의식의 흔적을

고쳐쓰기 어려운 이유로 즉흥적이면서도 진실한 기록을 가능케 한다.

그러니

만년필은 기억과 존재의 증언장치이다.


만년필이 완성되는 그 날을 고대하고 있다.


"타자기나 컴퓨터는 나를 단절시킨다.
만년필은 나를 다시 나에게로 돌려놓는다."
- 수전 손택


나와 같은 차원의 여정을 가고 있을 이에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만년필을 선물할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왜 사람은 고통을 겪어야만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