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첫 만남
*사진: Unsplash
라면 코너에는 이상한 정적이 있었다.
기계음, 발걸음, 카트의 진동음이 이어지는데도
그 구역만은 묘하게 조용했다.
결핍이 만들어내는 고요였다.
진라면 ‘아주 매운맛’은 단 하나 남아 있었다.
남아 있다는 사실보다
딱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더 강렬했다.
결정의 순간은 언제나 하나와 하나 사이에서 생긴다.
나는 손을 뻗었고,
그도 거의 동시에 손을 뻗었다.
우리의 손등이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아주 가볍게, 그러나 도저히 우연이라고만 넘길 수 없는 방식으로.
둘 중 누구도 먼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살짝 머뭇거렸고,
그 머뭇거림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생각보다 오래 바라봤다.
“아…”
그가 먼저 손을 내렸다.
사과인지 양보인지 혹은 말해지지 못한 감정의 그림자인지 모를 한 음절.
나는 남겨진 라면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라면 하나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의 첫 문장이었다.
“먼저 가져가세요.”
그가 말했다.
그 말의 표면은 친절이었고
그 말의 깊이는 조금 더 복잡했다.
양보라는 말은 때때로
‘당신을 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
“같이 고른 거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쓸데없는 농담이 아니었다.
단 하나의 물건 앞에서
둘은 늘 같은 시간에 도착한다.
그는 미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방어보다 호기심에 가까웠다.
우리는 나란히 걷지 않았지만
같은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질서가 생겼다.
계산대 앞에서
그는 다시 나를 보았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의도를 부른다.
“그… 마지막 하나였는데.”
그는 그런 말을 했다.
별 의미 없는 문장인데
왜인지 마음을 건드렸다.
아마도 누군가가 같은 것을 원하는 순간,
사람은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라면 봉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게요. 마지막 하나였네요. 잘 먹을게요!”
그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표시인지, 아쉬움인지,
혹은 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를 묻는 조심스러운 질문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우리 둘 모두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
아주 느리게 흐르는 시선 하나.
사람들은 이런 순간을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마음은 이런 순간을
‘기억’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