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굳이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진: 릴리시카
무의식적 투사적 사랑은
화르르 타오르고
즉각적이고
자극적이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확 뿌려준다.
뇌와 신경계 차원의
의식의 폭죽 상태
아니마/아니무스의 활성화로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신화이자
구원이자
운명이자
답이 된다.
강렬하고도 자극적인 사랑
그래서 너무 좋다.
너무너무 좋다.
그 단계의 사랑은
시인처럼 만들고,
미치게 만들고,
젊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걸 "진짜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렇다면,
굳이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문제는
투사적 사랑은
자신을 크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오히려
소모시킨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존재감이 요동치고,
관계가 흔들리면 자신이 무너지고,
사랑이 끝나면 세계가 끝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이 사랑의 에너지원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적 결핍과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화르르 불태우는 사랑은
그래서
황홀한 만큼 부서지고
열광하는 만큼 공허하고
운명이라 느끼는 만큼 배신감을 낳는다.
성숙한 사랑이 심심하다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건
중독이 빠진 뒤의 정적일지도 모른다.
성숙한 사랑은
자기가 사라지지 않는 사랑
관계 속에서도 중심이 잡히는 사랑
사랑이 끝나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그런 사랑
자신을 더욱더 크게 확장시키는 사랑이다.
성숙한 사랑이
더 고결해서가 아니라
더 옳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를 태우고 싶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함께 해도 긴장하지 않는 재미
설명 안 해도 통하는 재미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재미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재미
성숙한 사랑은 난로와 같다.
무엇을 선택하든
무방하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다시 들어갈 때는
돌아올 길을 알고는 들어가는 걸로 하자.
투사의 사랑이
얼마나 달콤한지
얼마나 잔인한 지도 아는 상태
불꽃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선택하지 않는 자유.
그게 진짜 깊은 단계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