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사고로 통제해온 사람의 메타신념이 흔들릴 때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경유하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블랙 스완』에서 인간의 가장 위험한 착각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취약해진다.


이 말은 단순히 예측 실패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탈레브가 겨냥한 것은 더 깊은 층위, 즉 인간이 세계를 다룬다고 믿게 만드는 사고 구조 자체다. 특히 논리적 사고를 통해 삶을 통제해온 사람들에게 이 착각은 거의 정체성에 가깝다.


1. 논리적 인간이 믿는 가장 강력한 신화

논리적 사고를 오래 사용해온 사람들은 대개 다음의 메타 신념을 공유한다.


“세상은 불완전하지만, 나는 분석과 판단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탈레브식으로 말하면, 이들은 자신이 메디오크리스탄(Mediocristan)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변화는 완만하고, 변수는 유한하며, 극단적 사건은 예외라는 세계관이다.

그래서 이들은 불확실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전제한다.

“불확실성도 결국은 모델 안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탈레브가 반복해서 말하듯 현실은 엑스트리미스탄(Extremistan)이라는 점이다.

변수는 누적되지 않고 도약하며, 설명 불가능한 사건이 전체 구조를 뒤집는다.


2. 메타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은 ‘틀렸을 때’가 아니다

중요한 지점이 여기다.

논리적 인간의 신념은 실패했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실패는 오히려 신념을 강화한다.

“이번엔 데이터가 부족했어.”

“다음엔 더 정교한 모델이 필요해.”

“예외값이었을 뿐이야.”

탈레브가 말한 내러티브 오류(narrative fallacy)가 정확히 여기서 작동한다.

사건은 언제나 설명 가능해지고, 설명이 붙는 순간 통제 가능성은 복구된다.


메타 신념이 흔들리는 진짜 순간은 따로 있다.


설명은 가능한데, 통제가 회복되지 않을 때.

논리는 작동하는데, 삶이 다시 정렬되지 않을 때다.


3. 블랙 스완은 사건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붕괴’다

『블랙 스완』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부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블랙 스완을 “예측 불가능한 큰 사건”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탈레브의 핵심은 다르다.

블랙 스완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대하는 인간의 무능을 폭로하는 장치다.


즉, 블랙 스완이 등장하는 순간 무너지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이 믿음이다.


“나는 내가 사는 세계의 성질을 안다.”


이 신념이 깨질 때, 사람은 단순히 놀라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기반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잃는다.


4. 왜 이 붕괴는 감정 폭발이 아니라 ‘정지’로 나타나는가

탈레브가 흥미롭게 지적하는 부분은, 인간은 극단적 사건 앞에서 즉시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후적으로 설명을 만들어낸다.


논리적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메타 신념이 흔들릴 때 그는 소란스럽지 않다. 대신 멈춘다.


판단을 유예하고

관계에서 거리를 두며

결론을 미루고

“좀 더 보자”는 말만 반복한다


이 상태는 감정 회피가 아니다.

운영체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나타나는 인지적 정지 상태다.


탈레브식으로 말하면, 이들은 자신이 쓰던 모델이 비취약(robust)하지도, 반취약(antifragile)하지도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5.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틀림’이 아니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삶을 통제해온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감정도, 관계도, 실패도 아니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세계는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는 다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인식이 들어오는 순간, 그동안의 합리성·신중함·분석 능력은 장점이 아니라 취약 지점이 된다. 왜냐하면 그 모든 능력은 동일한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6. 탈레브가 말하지 않은,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필요한 질문

탈레브는 여기서 멈춘다.

그는 “예측하려 들지 말라”, “노출을 관리하라”, “블랙 스완에 대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의 삶, 특히 관계와 내면의 영역에서는 질문이 하나 더 필요하다.


통제 불가능성을 인식한 이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갈린다.

어떤 이는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어떤 이는 세계를 냉소하며

극히 일부만이 자기 인식의 구조 자체를 수정한다

이 마지막 경우에서만, 메타 신념의 붕괴는 파괴가 아니라 사고 차원의 이동이 된다.


7. 결론: 이것은 붕괴가 아니라 ‘현실로의 편입’이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삶을 통제해온 사람들의 메타 신념이 흔들릴 때, 우리는 그들을 흔들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탈레브의 언어로 다시 말하면 이렇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엑스트리미스탄에 살고 있음을 자각했다.


이 자각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정직하다.

예측의 환상을 버리는 대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다루기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블랙 스완 이후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만이,

논리 이후의 삶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사족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투자계의 은둔자이자, 경제에 대한 구조적 분석으로 2008년 글로벌 위기를 예측한 공격형 사상가이다. 학자, 작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헤지펀드 트레이더 출신이고, 공개적으로 투자 전략이나 포트폴리오를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투자계의 은둔자이지만, 사상적으로는 광장 한복판에서 불 지르는 사람.

나는 미래를 맞힌 게 아니다.
이 시스템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당할 준비를 했을 뿐이다.


엑스트리미스탄 (Extremistan)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평균이 아니라 극단인 세계이다. 대부분은 아무 영향 없지만, 아주 소수의 사건이 모든 걸 바꿔버린다. 평균, 통계, 예측이 거의 쓸모 없어진다.


엑스트리미스탄에서는 한 번의 사건이 수천 번의 평범한 날보다 더 중요하다.


블랙 스완 (Black Swan)

사전에 예측할 수 없고, 발생하면 모든 질서를 바꾸며, 사후에는 원래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되는 사건이다. 탈레브가 말한 조건은 세 가지이다. 예측불가능, 충격적 영향력, 사후 합리화.


엑스트리미스탄은 무대이고, 블랙 스완은 그 무대 위에서 터지는 사건이다.


논리적 사고로 살아온 사람들은 보통 메디오크리스탄(평균이 작동하는 세계)을 전제로 살아간다. 노력하면 결과가 나온다. 설명하면 이해된다. 통제하면 안전하다. 그러나 엑스트리미스탄의 세계에서는 이 모든 전제가 다 깨어진다. 즉,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고, 설명 불가능한 변화가 있고, 통제 자체가 환상이 될 수 있다.


너희가 믿던 논리의 세계는
사실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했을 뿐이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 가능하다고 믿는 순간부터
가장 크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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