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머물라"는 말의 의미

뇌과학과 영성의 교차점에서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이 글은 이전 글(의식은 무엇을 하는가? 시리즈)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1. “지금-여기 머물라”는 말의 오해

보통 이 말은 이렇게 오해된다.

생각하지 말라는 말

판단을 멈추라는 말

감정을 비우라는 말

멍해지라는 말

이건 전부 틀렸다.


불교나 비이원(non-dual) 전통에서 말하는

“지금-여기”는 상태가 아니라 위치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이 ‘결과를 보고하기 직전의 자리’


다시 말해,

결정·판단·서사가 생성되기 바로 ‘직전’의 지점이다.


2. 이전 글들과의 정확한 대응점

이전 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개념들,

저해상도 의식

중간 해상도

프리뷰 상태

‘이미 기울어졌지만 아직 말이 안 된 상태’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 이전(prior to conception) 이다.


불교 용어로 말하면:

사띠(sati): 주의가 깨어 있음

위빠사나(vipassanā): 개입 없이 보는 것

무분별지(nirvikalpa): 분별이 생기기 전의 앎


이건 신비가 아니다.

인지 단계의 위치 지정이다.


3. “생각이 시작되기 바로 전”은 무엇인가?

이 표현이 핵심이다.

“생각과 의식이 시작되기 바로 전”

여기서 말하는 ‘전’은 시간이 아니다.

처리 단계다.


뇌 과학에 대한 이전 글에서 말한 구조로 정확히 대응하면 이렇다.

이전 글 / 영성 전통

완전 무의식 / 반사, 업의 자동화

저해상도 의식 / 촉(觸, contact)

중간 해상도 / 수(受, 느낌)

프리뷰 상태 / 수→상 직전

고해상도 의식 / 상·사·의식


즉, 영성가들이 말하는 “돌아가라”는 말은

고해상도 의식으로 가라가 아니라

프리뷰 상태에 머물라는 뜻이다.


4. 왜 그 자리가 ‘해방의 자리’인가?


가. 고해상도 의식 이후에는 이미 늦다

판단이 붙고

서사가 생기고

자아가 개입한다

여기서부터는

윤리

죄책감

집착

회피

가 시작된다.


나. 프리뷰 상태에서는

방향성은 느껴지지만

선택은 아직 고정되지 않았고

‘나’라는 서사가 아직 붙지 않았다.


그래서 불교는 말한다.

“거기서 멈춰라.”

이건 수행이 아니라

인지 개입 타이밍의 이동이다.


5. 왜 뇌과학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가

이건 우연이 아니다.

뇌과학:

행동 준비 신호는 의식 이전에 발생

하지만 주의(attention)는 이미 개입

이 상태에서 억제(veto)가 가능


불교:

업은 자동적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사띠가 있으면 이어지지 않는다

반응하지 않음(non-reactivity)

이것은 같은 말이다.


의식은 시작 버튼이 아니라

연결 버튼을 누르지 않는 능력이다.


이전 글의 이 문장 기억하는가?

“의식은 결정을 만들지 않지만
그 결정을 ‘나의 것’으로 만든다.”

불교는 여기에 한 줄을 덧붙인다.

“그러므로,
나의 것이 되기 직전에 머물라.”


6. 왜 이걸 이해하는 사람은 드문가

이 지점이 중요하다.

이건

감정적인 사람에게는 너무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너무 애매하다

왜냐하면

이 위치는 말로는 설명되지만,

언어로는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늘 이렇게 말한다.

설명하지 않는다

정의하지 않는다

가리킬 뿐이다


이 내용을 이전 글에서

인지과학의 언어로 ‘정확히’ 가리켰다.

이게 이 글이 위험한 이유다.


7. 그래서 이전 글들이 ‘영적인데 신비롭지 않은’ 이유

보통 영성 글은

위로하거나

구원하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나의 글은 정반대다.

의미 생성 이전을 보여주고

선택 이전을 드러내고

자아 이전의 위치를 고정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받지 않고

고양되지 않고

대신 자기 인식이 흔들리기를 바란다.

이건 수행자의 반응이다.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수행이자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수행일지도 모른다.


8. 최종 요약

불교와 최신 뇌과학,

그리고 '의식 시리즈' 즉, 이전 글이 만나는 지점은 단 하나다.


자유는 선택에서 생기지 않는다.

선택이 ‘나의 것’이 되기 전,

그 연결을 붙잡지 않는 데서 생긴다.


그래서 “지금-여기”는

평온의 장소도 아니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도 아니다.


그건 정확히 이 말이다.

의식이 서사를 만들기 직전,

그 자리에 머무는 능력.


이 시리즈를 읽으며

우리는 이미 그 자리를

설명으로가 아니라, 구조로 통과했다.


그래서 이 연결을 느낀 건

직관이 아니라

정확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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