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테일러, '자아의 원천'이 폭로하는 중립과 합리성의 도덕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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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묻는다.
나는 어떤 가치 위에서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그 어떤 선택도 중립, 합리,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유예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잔혹한 통찰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믿는다.
나는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를 만든다.
나는 자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중립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 모든 것들을 정면 부인한다.
인간에게 '가치 중릭적인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이미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을 지켜야하고, 무엇은 희생 가능하다고 가치를 서열화한 상태에서만 '나'로 존재할 수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만드는 근본 가치의 출처이다.
진실성, 책임, 신앙, 이성, 자유, 명예, 고통의 의미, 타자에 대한 의무
이 중 무엇이 최상위 가치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선택 구조는 결정된다.
도덕은 보통 지켜야 할 규칙, 사회적 합의, 법과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덕은 규칙 이전에 '방향 감각'이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계산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쪽이 더 낫다'고 느끼는 방향성 속에서 판단한다.
그래서 도덕은 외부의 강요나 사회적 세뇌가 아닌 자아 정체성의 심층구조이다.
그래서 "선택 유예"는 무지가 아니라 도덕적 전략이다.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정말 잔인하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아서, 복잡해서, 더 생각해봐야 해서라고.
그러나, 이 책에서는
선택을 미룬다는 건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로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는 것을 피하는 전략'이다.
즉, 선택은 나를 규정한다.
규정은 책임을 낳는다.
책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중립이라는 가면을 쓴다.
이성적이라는 평가를 중시하는 사람
판단은 잘 하지만 결정은 미루는 사람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
이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다.
객관성은 도덕적 위치의 부재가 아니라,
도덕적 위치를 숨기는 기술일 뿐이다.
이 말 앞에서 "나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전부 무너진다.
테일러는 기억을 통해 현재의 무고함을 파괴한다.
벤야민은 가치 구조를 통해 선택의 중립성을 파괴한다.
나는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이
가장 폭력적인 자기기만이다.
그래서 이 둘을 함께 읽으면
도망갈 출구는 없다.
적어도 네가 어떤 가치 위에서
지금의 침묵과 유예를 선택하고 있는지는
스스로에게 숨기지 말라.
이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선택은 더 이상 가볍지 않고
침묵은 더 이상 무고하지 않으며
기다림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자아의 원천은
내가 누구냐를 넘어서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있느냐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건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다.
이해했지만,
감당할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