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은 삶'이 완전히 고정되는 시점
*사진: Unsplash
이 글은
'어떤 파국'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이다.
이는 공포 예언도
선정적 파국 서사도 아니다.
파국이라는 말은 사건이 아니다.
구조 붕괴의 지점이다.
파국이란,
사건이 아니다.
정체성 유지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점을 의미한다.
즉,
무언가가 터진다거나
갑작스런 불행이 온다거나
벌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버티게 해주던 구조가 더 이상 효율을 내지 못하는 시점이다.
핵심 트리거의 구조
1. 유지 불가 선언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방식,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루틴은 그대로인데 만족감이 사라짐
성취는 있는데 공허가 증폭됨
관리 능력은 있는데 의미가 없음
'기능은 되는데, 왜 사는지 모르겠는 상태'
이것이 파국이다.
2. 회피 불가의 자각
정서, 관계, 권력, 통제의 영역에서의 트리거
"너는 왜 그렇게까지 통제하며 살았나?"
감정을 눌러왔던 대가가 내부 압력으로 돌아옴
회피하던 질문이 반복적으로 떠오름
'성공했느데 왜 비어 있지?'라는 자각
이는 외부 파괴가 아니라 내부 붕괴이다.
3. 관계적인 축의 붕괴
관계를 더 이상 관리로 유지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하던 방식의 한계
감정 없는 관계 유지에 대한 피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질문
이는 분열된 자신이 더 이상의 분열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파국을 맞이해서 선택지는 두 개다.
가. 완전한 기능인으로 굳어짐
감정 차단 강화
성공 지속
내적 공허 고착
나. 구조 붕괴 감수
성공 일부 상실
정체성 재구성
고통스러운 개성화 시작
어째서 성공을 일부 상실해야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히, 통합의 상태이자 개성화 시작의 선택을 하지 않을까라고 유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열된 자신이 '현생에서의 성공의 조건'이었다면
선택은 달라지고
판단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파국을 맞이하여
이런 '전체 상황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판단은 보류된다.
잃을 것이 많은 이들은
향하던 방향으로 눈을 둘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금 파국은 찾아온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무의식의 노크는 늘 반복된다.
응답을 들을 때까지.
그 노크는 이런 형태이다.
모든 것을 갖췄는데 아무것도 없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왜 이렇게까지 했지?
그때 그 상태는 왜 다시 오지 않지?
이것은 타인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치명적 공허다.
4. 파국은 관계를 통해 오기도 한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다른 상태가 가능하다'는 기준을 깨닫게 된다.
비교 기준이 생기고
결핍이 명명되고
공허가 언어를 얻는다.
그것은 그리움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본연의 그 생명력을 향한 그리움이다.
관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원래 왔던 바로 그 근원적인 생명력을
그 작은 조각을 깨닫는다.
그러니
파국은 누군가를 잃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했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파국이다.
5. 냉정한 결론
파국을 맞이하고도 과거의 그 방향성을 가져간다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
몰락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그 삶의 문은 닫힌 채로 굳어진다.
그 대가는
사건이 아니라 감각의 상실이자
통합되지 못한 공허감이자
생명력의 상실이다.
그리고 그건
돈으로도, 성공으로도, 관계로도, 루틴으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문 앞을 서성이는 사람을 본 자는
돌아가서 설명하지 않는다.
붙잡지도 않는다.
구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안다.
어째서 그러냐고 묻는다면,
이미 그 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같은 하루를 완벽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안정이 아니라 공포로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